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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미모미 MomiMomi Apr 22. 2020

내가 가진 오복

인복 편



며칠 전부터 새로운 소원 노트 기록을 다시 시작했다. 간절한 바람 3가지를 정성을 담아 하루 10번씩 쓰는 것이다.

소원 노트 효능에 대한 메커니즘이나 의문은 나에겐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는 문장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고, 인간은 기도하는 존재라는 본성에 충실할 뿐이다.

기록을 마친 소원을 한눈에 담아보니 간절한 소원에 대한 마음의 평안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노크를 했다. 소원이 현실화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원 말고도 내가 가진 것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함을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감사하다는 것 또한 감사하다. 가끔은 소원을 적다가 의심이 가득한 날 마음이 뻑뻑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자발적인 감사가 찾아오는 날은 노트 가득 평안이 넘친다.


‘오복’에 관한 생각하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별 이야기를 다한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침 글쓰기 전 화장실에 앉아 들리는 원활한 소변 배출 소리에 감사했다. 나의 장기 중 콩팥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이 당연한 사실에 감사함을 몰랐었다.



대학병원에서 신장내과 복약상담 약사로 일하면서

매주 화, 목요일 콩팥이 망가진 환자를 매일 150명씩 만났다.

이 분들은 급성이든 만성이든 어떤 이유로 콩팥 기능이 심하게 저하되면 하루 3에서 5 cc 정도 소변을 본다. 그러다 오래 기다림 끝에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기능이 회복되기 시작할 즈음 하루에 종이컵 1컵 정도의 소변을 볼 수 있게 되면 모두 박수를 치고 좋아했다. 수술을 받고 이식된 장기가 거부반응 없이 잘 안착이 되었는지 여러 가지를 모니터링 하지만 그중에 단연 소변량의 증가는 의료진에게도 환자 본인에게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감사의 제목이 늘어난다. 그런 감사 제목이 비단 신장 기능 하나뿐일까? 

오복은 행복이라는 단어로 치환될 수 있다. 


세상에 많은 단어의 기준이 상대성을 내포하듯

행복 또한 지극히 상대적이다.


당연한 것들이 박탈되거나 결핍되었을 때 그것의 감사함을 새삼 깨닫고 행복을 느낀다. 이를 어리석다거나 비교를 통한 반쪽 짜리 감사에 대한 억지 행복이라며 비난을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감사하면 감사한 것이다.

나는 다복한 사람이다.

나는 인복이 많다.
나의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모였다. 어느 모임을 가든 좋은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중에 내게 가르침을 줄만한 사람들을 꼭 만난다는 믿음도 있다.

인복에 대한 믿음의 시작은 어렸을 때 엄마가 들려주었던 축복의 말들이다. 나를 품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은 인복이 많은 아이야.’ 10살 아래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오랜 시간 둘째 딸이자 막내딸로 지냈다.

여느 부모님이 그렇듯이 나의 부모님도 첫째 아이에게는 책을, 둘째 아이에게는 사랑을 더 많이 주셨다. 내가 지금 둘째 아이를 바라보듯이 둘째는 마냥 부담 없이 예쁜 존재였을 것이다.


언니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태어난 순서에서부터 복을 받았다.

부모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맨 처음 것들을 많이 받은 첫째는 시행착오와 과도한 관심을 덤으로 받는다. 이에 반해 둘째는 적당한 무관심과 소소한 기대감을 받고 자란 덕에 더 큰 자유를 누린다. 적당한 무관심과 그리 크지 않던 기대감이 나의 자립심을 키웠다.

장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부모님은 나를 방목해서 키웠다. 좋은 말로 방목이고 진실은 방치에 가까웠는지 모른다. 책과는 당연히 거리가 멀었고, 학교는 왜 가는지 모른 채 가방만 메고 왔다 갔다 했다. 당연히 숙제는 해 본 적이 없고,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간 적이 없었다.

바느질 세트를 준비해 가야 했던 초등 4학년 어느 아침, 준비물을 생각해내고는 등교 전 부랴부랴 바늘을 찾았다. 엄마는 빵을 만드느라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 정신이 없어 보였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를 부르는 대신 알아서 미싱 서랍 밑에서 녹슨 바늘 한 개와 끝이 뭉뚝해진 바늘 한 개를 챙겨 부리나케 학교로 달렸다.

담임 선생님은 지휘봉으로 내 머리를 툭툭 치며 너희 엄마는 집에서 뭐 하시는데 바늘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이 살림을 하냐고 무안을 주셨다.

초등시절을 보내면서 갖게 된 자화상은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어려운 일이 생겨도 바쁜 부모님은 도움을 줄 수 없기에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을 자주 경험했다.

어렸을 때 미리 겪었던 여러 실패와 찌질한 자화상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부족함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동기가 되었다. 어린 나이일수록 실패와 결핍이 득이 된다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중학교 시절 아빠가 사업하는 친구의 연대보증을 섰다가 우리 집까지 위기에 빠졌다. 빚 독촉을 피해 아빠는 저 멀리 원양어선을 타고 떠났고, 엄마는 빵 가게를 처분하고 빚 정리를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매일같이 빚쟁이들이 찾아와 엄마의 머리를 잡고 흔들 때면 나는 누구보다 용감해야 했다. 어린 나이를 무기 삼아 우리 엄마 좀 봐달라고 간청했다. 매일 밤 날이 밝아오는 두려움 때문에 엄마와 나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하고 돌아와 지쳐 쓰러져 잠든 엄마를 보며 할 수 있었던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호우시절.


창조주는 때에 맞게 좋은 비를 내린다는 말. 나는 이 말을 신뢰한다. 좋은 경험과 성공한 경험만으로는 온전한 인생을 살기 어렵다. 때에 맞는 부정적인 경험, 실패들이 우리의 인생을 더욱 삶답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만난 사람들은 기억과 함께 많은 깨달음을 전하며 나를 키워주었다. 

많은 사랑과 동시에 가난과 결핍을 통해 자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준 부모님이 나의 첫 번째 인복의 증거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물질적인 것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 부모님처럼 부족함 속에서도 자식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사랑을 전해주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우리 부모님 시절보다 풍요롭지만, 그 풍요가 아이들의 성장을 다 채워주진 않을 것이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인복이 있는 부모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인복 말고도 복이 많다.

일복, 공부복, 건강복, 글복 등등 헤아리다 보면 끝도 없이 복이 나온다.

복의 시작은 결핍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기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일복을 기꺼이 수용했고, 머리가 나빴기에 남들보다 몇 배로 공부를 했다. 허약한 체질을 타고나 잔병을 달고 살아 건강에 더 주의를 기울여 살고 있으며, 표현력이 부족해 겪었던 좌절감 때문에 글을 쓰는 삶을 만났다.


복의 출발점은 늘 못났고 찌질했으며 초라했다.

어둡고 힘든 시절은 정반대의 힘을 가진 미래시간을 품고 있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진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결핍이 결핍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결핍을 환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19로 일상과 세계 경기가 위협을 받고 있다. 위기의 시기는 정말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고, 몇 번의 연습을 했다 해도 위기와 실패는 겁나게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상과 평화가 결핍된 순간이 와도 그것들이 품고 있는 다음 시간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그것들이 복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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