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것은 연결인가요, 중계인가요.
우연히 영화 <릴레이 Relay>를 보게 되었습니다. 독특한 소재의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감상기를 써보았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릴레이>의 감독은 데이비드 매킨지입니다. <헬 올 하이어 워터>, <퍼펙트 센스>, <스타드 업> 등을 연출한 감독입니다. 이 중 <헬 올 하이어 워터>는 테일러 쉐리던이 각본을 썼는데 <시카리오>, <윈드 리버>와 더불어 국경 3부작 중 한 편으로 유명하고 저도 매우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스타드 업>도 저에게는 매우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릴레이는 말 그대로 A와 B를 중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피상적으로는 주인공이 다른 인물들과 연락을 할 때 사용하는 릴레이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이 서비스는 주인공이 문자로 전달할 내용을 남기면 중계 업체가 그 문자를 읽어서 상대에게 전달해 주고, 상대가 말을 하면 이를 문자로 바꾸어서 주인공에게 전달해 줍니다. 과거의 전보나 거의 비슷한 것이지만 실시간이라는 차이가 있고, SMS와 거의 유사하지만 정보를 릴레이하는 업체는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무슬림인데 911 이후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주류 사회에 편입하려 애쓰다가 알코올 중독에 빠집니다. 그는 과거 월스트릿에서 일하던 인재이며,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계획을 세우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무고한 피해자를 낳는 부패한 기업들을 고발하려다가 월스트릿에서 퇴출당합니다. 그 이후 그는 거대 기업들의 치명적인 비밀 정보를 가진 내부고발자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는 고립된 채로 살아갑니다. 당연히 외로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단주 모임)에 나갑니다. 알코올이라는 물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적응적인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니까요.
그는 원칙을 지키면서 일을 해서 지금까지는 실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누군가와의 친밀한 관계가 필요했고, 그래서 감정적 결정을 내리게 되며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릴레이>는 기본적으로는 스릴러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흔히 다루는 거대 기업의 음모, 은폐된 비밀을 폭로하려는 용기 있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제거하려는 폭력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전개됩니다.
이 영화의 특이한 장치라고 한다면 위에서 설명했던 릴레이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중계 서비스는 기계적이고 차갑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connect가 아니라 relay라는 표현을 썼을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연결하는 역할이 아니라 중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온도가 없는 중계 서비스처럼 그도 그저 몰감정적으로 중계를 합니다. 그러다가 감정이 혼합되며 그는 중계가 아니라 연결되고자 했고, 그것이 파국, 혹은 다음 단계로의 파괴적 도약을 이뤄냅니다.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개인은 독립된 개별적 실체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연결을 원합니다. 개인은 말과 감정으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교감을 통해 그 연결이 완성됩니다. 연결되지 못해 고립된 인간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외로운 인간은 어디에든 연결되고 싶은 나머지 유해한 물질, 관계, 집단에도 무분별하게 접속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은 연결로 인해 해소됩니다. 그 연결이 자기 파괴적이라고 하더라도 외로움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연결을 끊지 못합니다.
인터넷 세상의 많은 서비스들이 뭔가를 릴레이, 즉 중계합니다. SNS도 그렇고, 결혼 정보 회사도 그렇고, 데이팅 앱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중계자들이 우리의 삶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었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미디엄 medium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미디어 media의 단수형입니다. 미디엄은 매개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영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영매가 주인공인 미디엄이라는 드라마도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많은 서비스들은 현대판 영매나 마찬가지입니다. 영매는 혼령과 인간 사이를 중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불안을 녹입니다. SNS, 결정사, 데이팅 앱들도 그렇습니다. 이 중계자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외로움, 불안, 실존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영매의 역할은 실체 없는 것에 분명한 실체인 우리가 잠시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그 실체 없음은 사라집니다. 지금 우리가 온갖 앱들에 의존하여 실체 없는 무엇에인가 연결되고자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허기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