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버는 돈의 50%는 8살 무렵에 결정됩니다.

너무 이른 위기 The Early Catastrophe

by RayShines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제임스 헤크먼 James J. Heckman은 개인의 평생 소득 불평등을 결정짓는 요소들 중 50%는 8세 무렵에 이미 결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이 행복한 삶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반드시 대니얼 캐너먼의 연구가 인용됩니다. 2010년에 그와 앵거스 디턴이 쓴 논문에 따르면 75,000달러까지는 돈과 행복이 정비례하지만 그 이후에는 별 상관이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논문은 황금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데 많이 인용되긴 합니다. 하지만 이 논문에는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많은 행복을 살 수 있는 것 아니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면 감정적 고통을 느낄 수 있다. More money does not necessarily buy more happiness, but less money is associated with emotional pain.” 분명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삶은 매우 힘들고 불편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견뎌냅니다.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임스 헤크먼의 연구는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평생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은 대부분 명확히 상방이 막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아주 크게 다릅니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인데 소득의 불평등을 결정짓는 요소의 절반이 8세 때 모두 결정이 된다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 물질적 성공에 50% 정도만 기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개인이 갖고 태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차이가 큽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DNA, 아마도 부모 역시 그들의 부모에게 물려받았을 성격적 특질, 그로 인해 부모가 양육 과정 중 보이는 감정적 반응과 태도, 부모 사이의 언어적, 감정적 상호 작용, 부모의 소득에 따라 조성되는 환경의 차이, 그에 반드시 수반되는 학군의 차이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 인간의 성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2003년도에 토드 리슬리 Todd Risley와 베티 하트 Betty hart가 발표한 “너무 이른 위기” 정도로 번역되는 논문이 있습니다. 원제는 The Early Catastrophe입니다. 그들의 요지는 빈곤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다섯 살이 됐을 때 평균적 중산층 차이보다 듣고 자란 단어의 수가 3200만 개나 적다는 것입니다. 3200개가 아니라 3200만 개입니다.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물질적 풍요라는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아이는 시간당 178개의 단어에, 운이 좋아 전문직 부모를 둔 아이는 시간당 487개의 단어에 노출됐습니다.


단어 몇 개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요소들이 개인의 성장 궤적의 초기에 큰 편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제임스 헤크먼과 토드 리슬리, 베티 하트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처음에 각도가 틀어진 채로 성장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차이를 메울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다는 것 말입니다.


어휘에 대한 노출은 단순히 어휘의 개수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풍성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의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은 사고의 깊이와 직접적 연관이 있습니다. 아주 단순히 이야기해서 우리는 단어로 모르는 개념에 대해서 사고하기 어렵습니다. 호랑이가 뭔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호랑이라는 단어도 모른다면 그것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상호 호혜라는 개념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면 그 개념을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실제로 그것을 삶에서 구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고력은 결국 학업 성적, 그리고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변수를 고려하는 방식 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당연히 지능지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높은 지능지수가 사회적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신뢰할만한 요인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어느새인가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디폴트값이 됐습니다. 성공할 가능성을 가진 이들이 크게 성공하는 것을 막는 것은 자유라는 기본적 기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좋은 운을 타고나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성공하라며 성공을 규제하는 것은 사회의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아마도 지금 필요한 것은 양극화라는 단어의 프레임이 매몰될 것이 아니라 적은 투자로 삶이 나아가는 각도를 조정할 수 있는 이들에게 충분한 자원을 배분하는 것입니다. 뛰어난 이들에게 족쇄를 채울 것이 아니라 날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생각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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