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마녀 사냥 교본이 된 인터넷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by RayShines

마녀. 우리는 마녀들을 사냥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들이 누구길래 우리는 이토록 그들을 멸시하고, 또 두려워할까요.


16세기 유럽, 사회 기강은 해이해지고 사람들은 타락했습니다. 그 틈을 타 마녀가 창궐했습니다. 사람들은 밤에 외출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마녀를 잡는 법적 기준을 만들어냈습니다. 물에 던져 넣었는데 뜨면 마녀, 온몸에 고통을 주었는데 특별히 고통을 느끼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곳으로 악마가 들어갔다는 것이니 마녀, 그리스도 이야기를 듣고도 눈물 흘리지 않는다면 마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563년에 네덜란드의 의사 요한 베이어르가 <악마의 속임수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나이 든 여성 중에는 눈물샘이 위축되어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가 베이어르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마녀 사냥에 있어 타협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은 금서가 되었습니다.


마녀 사냥과 관련하여 기념비적 저작은 1486년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입니다. 말레우스가 망치, 말레피카룸이 마녀이니 마녀 잡는 망치라는 제목이지요. 이 책은 마녀를 식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마에 들린 사람은 악령 때문에 경련을 하니 이것이 마녀의 확실한 지표라는 것입니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은 비슷한 시기에 발명된 인쇄술 덕분에 30쇄를 넘게 찍었고, 이 책을 근거로 살해된 사람을 많으면 100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다시 말해 요즘 같으면 뇌전증 진단이 내려지며 치료를 받았어야 할 사람들이 모두 악령이 들린 사람으로 간주되어 살해되었다는 것입니다.


1692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두 소녀가 갑자기 간질 발작을 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 소녀들에게 악령이 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동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마녀에게 고문을 당하거나 흑사물에 걸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흑마술을 부렸다는 죄명으로 144명이 체포됐고 19명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무거운 돌덩이에 깔려 죽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에 대해서 잘 모르면 혐오하게 되거나 두려워하게 되기 쉽습니다. 우리와 다른 존재는 우리에게 병을 옮길 수도 있고, 우리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이방인에 의한 전염병으로 몰살한 집단이 꽤 많으니 이런 두려움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뭔가를 설명할 수 없을 때 그것을 신비의 영역으로 내던져 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미스터리, 불가사의, 그런 표현을 쓰면서 말입니다.


미지의 것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이 어두운 신비와 결합되면 그때는 집단적 광풍이 일어납니다. 이때 비로소 마녀 사냥이 정당화됩니다. 모두가 마녀를 죽이자는 말을 할 때 베이어르 같은 사람이 나서서 “그래도 눈물샘이 말랐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선량한 피해자는 없도록 합시다”라고 하면 그 사람도 같이 마녀 사냥을 당하게 됩니다. 애당초 비합리적인 것에 조금 합리적인 사고를 더하고자 하는 시도를 사람들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비합리성 전체가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잘못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잘못을 낱낱이 해부합니다. 그리고 “저 시점에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됐었다”며 비난을 시작합니다.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나면 어디서 뭐가 잘못 됐는지 보이지만 일이 진행될 때는 그게 그리 쉽지 않다고 누군가가 옳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합리적 의견은 “일침충”이라며 일축됩니다. 잘못은 저지른 사람은 마녀가 되고, 사람들은 마녀를 사냥하기 시작합니다.


이상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 뭔가 실수나 잘못을 하는 사람은 미지의 대상이 아니며, 그 상황이 신비롭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은 한 번도 과오를 저지른 적이 없는 완전무결한 인간인 것처럼 대상을 단죄합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저런 잘못을 저지른 부도덕한 인간”, 마녀라고 낙인찍습니다.


악의를 갖고 의도적으로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로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삶의 순간에 했던 평범한, 혹은 습관적인 결정에 의해 발생한 잘못이나 실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사회적으로 소거할 만큼 큰 일일까요. 과연 우리는 그런 실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을까요. 우리가 더 이상 평범한 실수조차도 관용할 수 없는 것은 인터넷이 현대판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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