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는 노력의 산물일까요, 재능의 발현일까요?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칭찬 방법

by RayShines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녀들이 더 유능해지길 바란다면 어떻게 칭찬을 하는 게 좋은 지도 알고 있을까요?


아주 오래된 연구이기는 합니다만 1998에 스탠포드의 캐럴 드웩 Carol Dweck은 전 세계의 부모들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지금으로 치면 오은영 선생님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게재한 논문의 제목은 “지능에 대한 칭찬은 자녀의 동기와 수행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Praise for Intelligence Can Undermine Children's Motivation and Performance)”였습니다. 대치동의 부모들이 들으면 눈에 번쩍 뜨일만한 논문 제목이지요.


그녀는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시험을 보게 한 뒤 잘 한 아이들에게는 칭찬을 했습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말입니다. 한 그룹에게는 “너 정말 똑똑하구나(You must be smart)”라고 칭찬을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너 정말 열심히 했구나(You must have worked hard)”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이때 똑똑하다고 칭찬을 받은 아이들, 즉 타고난 재능에 대한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다음번 과제를 더 잘하려는 동기가 떨어지고, 회복력도 낮아졌으며, 과정 자체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노력에 대한 칭찬, 즉 타고난 것이 아닌 후천적 의지에 대한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다음번 과제에 더 열심히 임하고, 더 높은 회복력을 보였으며, 과정 그 자체를 더 가치 있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왜 그렇게 다른 결과를 냈던 것일까요? 캐럴 드웩은 노력에 대한 칭찬은 성취의 과정에 집중하게 만들어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힘을 키워주는 반면, 재능에 대한 칭찬은 성과 자체에 얽매이게 만들어 실패 시 동기를 급격히 저하시킨다고 설명했습니다.


“너 참 똑똑하구나”라는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과제를 수행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이유가 자신의 똑똑함을 입증하기 위해서로 국한되기 쉽습니다. 이로 인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실패하게 되면 “나는 그 정도로 똑똑한 게 아니었나 봐”라고 생각하며 실패의 원인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피하기 위해 안전하고 쉬운 과제를 택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너 참 열심히 했다”라는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난 똑똑하지 않을지 몰라도) 열심히 해서 이걸 얻어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패해도 “열심히 하면 다시 또 얻어낼 수 있을 거야”라며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노력을 하는 것이 재능과는 달리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기 때문에 크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회복력도 더 높고, 도전적인 과제를 선택하는 경향성도 높습니다.


지능을 재능의 발현으로 보게 되면 이는 고정 불변된 특질로 보이기 쉽습니다. 따라서 재능이 있거나, 없거나의 이분법적 문제로 변질됩니다. 반면 지능을 노력과 학습이 축적된 결과로 보면 지능은 서서히 나이질 수 있는 연속선 상의 특질이 됩니다. 당연히 재능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전자와 같이 생각하고, 노력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후자와 같이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정말 그럴듯합니다. 다 맞는 말이니까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저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슬프게도 지능을 결정짓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DNA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2012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성인기 지능의 50%는 11세 때의 지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인기에 거쳐 나타난 두뇌 기능의 변화 중 25%가 DNA에 의해 결정됩니다. 따라서 타고나는 부분이 62.5%, 그리고 후천적 요인에 의한 부분이 37.5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의 노력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40%에 가까우니 분명히 우리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함정이 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지는 정말 후천적인 요소일까요? 위에서 전 계속 재능은 타고나는 것, 노력은 타고나지 않아도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재능, 적성, 충동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력, 의지, 충동에 대한 저항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노력, 의지, 충동 조절까지 재능의 영역이라면 우리의 삶이 너무 공허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허무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의지는 의지의 영역이라고 강력히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운동을 아주 잘하거나, 노래를 아주 잘하거나, 수학을 아주 잘하면 타고난 근섬유의 비율이 좋다, 좋은 성대를 타고났다,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네트워킹이 이상적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엄청난 의지를 발휘하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의 뇌,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DNA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훨씬 더 간단하고, 훨씬 더 우리를 안도하게 하는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면 된다.”


의지, 근면, 성실, 인내, 꾸준함이 재능인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모든 특질이 그러하듯이 이것들 역시 DNA의 구속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봅니다. 생물학으로 설명하고 싶은 것은 생물학으로 설명하고, 자유 의지로 설명해야만 하는 것들은 자유 의지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 노력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지금 당장 머리가 좋아지라고 명령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분명 인간이 DNA에 강력히 속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결정짓는 요소 중 DNA는 절반 정도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분명 우리의 경험, 선택, 행동에 달려 있음에 분명합니다.


저는 모든 것이 다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시각에도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 허무주의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 생물학에 위배된다고 하더라도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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