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종분화와 비인간화
인간은 원래 편 가르기를 좋아합니다. 우리의 편 가르기 본능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유사 종분화(pseudospeciation), 비인간화(dehumanization)입니다.
유사 종분화는 무슨 뜻이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설명이 조금 필요한 용어입니다. 유사종분화란 우리와 다른 성격을 지닌 특정 집단을 아예 우리와 다른 종인 것처럼 취급하는 현상입니다. 우리와 다른 종이라고 취급할 때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할리는 없겠죠, 바퀴벌레, 쥐, 뱀 등 우리보다 열등한 종이라고 취급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참고로 유사종분화의 유사는 영어로는 대부분 pseudo라는 접두사로 쓰이는데, 진짜 뜻은 “가짜”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사 종분화라는 것은 서로 다른 종이 아닌데 “가짜로” 다른 종이라고 분류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어떤 집단을 우리와는 다른 종이라고 분류한다면 그때부터는 비인간화가 시작됩니다. 곤충, 설치류, 파충류로 이름 붙였으니 당연히 인간 취급을 해줄 리가 없습니다. 인간이 아니니 핍박, 더 나아가 박멸이라는 대응이 정당화됩니다.
유사 종분화가 한 단어로 응축된 것이 바로 인종이라는 표현입니다. 인종은 생물학적 용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종 간의 DNA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인종은 사회학적 용어에 가깝습니다.
생물학자들이 하나의 종을 여러 개의 아종으로 나누는 기준 중 하나는 두 집단 사이의 유전적 경계가 뚜렷한지를 보는 것입니다. 조사를 해보면 인종 사이의 유전자적 차이는 불연속적이지 않습니다. 각 인종은 생물학적으로는 연속선 상에 존재합니다. 한 인종 내의 유전적 변이는 인종간 변이만큼이나 큽니다. 다시 말해서 유재석과 강호동 사이의 차이가 유재석과 버락 오마바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같은 인종으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극단으로 치닫게 된 유사 종분화가 참혹한 결과를 낳은 것이 르완다의 대학살입니다. 르완다에는 농부들인 후투족과 목축인들인 투치족이 모여 살았습니다. 원래는 소수인 투치족이 후투족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62년에 후투족이 정부를 장악하면서 두 부족의 반목이 갈수록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후투족 출신 대통령인 쥐베날 하브야리마나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미사일에 격추되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합니다. 그 이후 후투족은 대통령의 사망을 투치 족의 암살이라고 주장하며 복수를 시작합니다.
후투족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라고 지칭하며 끊임없이 유사 종분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바퀴벌레를 박멸하자, 바퀴벌레들이 우리의 남편, 아내, 자녀들을 훔치고 있다며 후투족들의 자기 보호 본능과 투쟁 본능, 공격 본능을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후투 수뇌부는 후투족들에게 그 분노를 실현할 도구인 마체테, 즉 정글도를 지급했습니다.
후투족 가톨릭 신부였던 아타나 제세롬바는 2000명의 투치족들을 성당으로 피하게 한 뒤, 후투족 민병대를 불러 성당 안 사람들을 모조리 학살하게 합니다. 이때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학살은 100일 동안 이어집니다. 투치 인구의 75%인 80만~100만 명이 살해됐습니다. 그 와중에 후투족 역시 10만 명이 살해됐습니다. 이는 르완다 국민 7명 중 1명이 사망한 셈이었습니다. 전체 인구 대비로 보자면 홀로코스트의 5배에 달하는 대학살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기와 다른 존재에 대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잔혹해질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청소하겠다, 박멸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종교 때문일 수도, 자원 때문일 수도, 내부 결집용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종으로 분류된 집단은 모든 인간성을 박탈당한 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생명을 빼앗겼습니다.
인간의 폭력적 행동에 1차적인 제동을 거는 것은 죄의식입니다. 우리에게는 같은 사람끼리 이래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의식을 유사 종분화라는 도구로 우회하면 인간의 폭력성은 상상을 초월해 잔혹해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분노,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생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감정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감정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감정을 빠르고 무비판적으로 발생합니다. 감정을 따돌릴 유일한 방법은 한 박자 판단을 늦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뿐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혐오는 문제 해결의 답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