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는 선택이지만, 빈곤은 명령에 가깝습니다.

결핍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by RayShines

검소하고 싶은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만, 빈곤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가지가 비슷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검소와 빈곤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검소는 의식적인 절약입니다. 검소한 사람들은 본인이 세운 규율이나 원칙에 근거해서 돈을 쓰거나 쓰지 않습니다. 이들은 뭔가를 구매할 때 가격이 합리적인지를 판단합니다. 싼지 비싼지가 아닙니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그 물건이나 서비스가 그 정도의 효용을 자신에게 가져다줄지, 자신의 불편함을 해소해 줄지 등이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는 판단이 들면 비싸더라도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싸더라도 구매하지 않습니다.


빈곤은 이와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빈곤은 결핍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결핍이란 필요한 무엇인가를 필요한 정도로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자원이 부족한 이들은 구매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가격 그 자체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싸면 아무리 합리적인 구매라고 해도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가격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내가 이것을 사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입니다. 이른바 트레이드 오프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빈곤한 이들의 자원은 희박합니다. 따라서 뭔가를 취득하는 것은 반드시 뭔가를 포기해야만 가능합니다.


검소한 이들이 모두 부유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이들이 검소할 가능성도 높진 않습니다. 하지만 검소한 이들은 빈곤한 이들이 빠져있는 결핍의 늪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자원이 충분합니다. 그래서 검소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이것을 샀을 때 뭘 포기해야 하는지 양자택일적 선택을 강요받지 않습니다. 이들은 트레이드 오프를 고민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원하는 만화책을 한 권 사줄 수 있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주는 가치와 만화책 한 권으로 아이가 느끼는 효용을 둘 다 취할 수 있는데 굳이 하나를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같은 금액이라도 빈곤과 검소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가치가 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부유하면서 검소한 이들과 결핍에 빠져 있는 빈곤한 이들은 서로가 가진 돈의 가치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어린 시절 가난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요. 성공한 이후 그녀가 백화점에 갔는데 드레스 두 벌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속으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그녀라면 둘 중 하나도 간신히 살까 말까 했을 테니까요. 그러다가 이내 한 가지를 깨닫고는 기분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나는 둘 다 살 수 있구나.”


위의 에피소드는 물론 검소의 예가 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트레이드 오프를 고민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극명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금전적 여유라는 것이 인간의 마인드셋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여유를 가진 이들, 검소를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은 결핍에 빠진 빈곤한 이들에게 쉽게 이야기합니다. “일단 저축하고, 그러고 나서 남은 돈을 계획적으로 쓰고, 시드 머니를 마련한 뒤, 투자를 해라. 난 그렇게 부자가 됐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사소한 돈을 아끼는 습관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보자면 개인의 빈곤을 가장 크게 좌지우지하는 요인은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입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에 태어났는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지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민족은 모두 같은 국가에서 태어났으니 그 요인은 배제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부자인지를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나의 부모가 부자인지 여부입니다. 이것 역시 내가 선택하거나 노력으로 얻은 것은 아니지요.


누군가를 빈곤과 결핍의 덫으로 몰아넣는 가장 큰 요인은 그 개인의 행동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빈곤을 원하는 이는 없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빈곤한 이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해서 빈곤해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빈곤을 100%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기여분이 0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분명 빈곤이 실패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만성적인 결핍으로 인해 늘 뭔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의 판단력은 흐려지기 쉽습니다. 그 결과 만성적 빈곤은 실패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부자들이 했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빈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무조건 단정 지을 수 없으며, 빈곤을 무조건적으로 나태와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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