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면 사라지는 우리의 감정 | 룸펠스틸츠헨

by RayShines

룸펠스틸츠헨 Rumpelstizchen 이라는 요정이 있습니다. 그림 형제 동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누군가 그의 이름을 맞추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매 순간 감정을 느낍니다. 감정은 우리를 희망에 차오르게 하기도 하고, 낙담하게 하기도 합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인데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되기도 합니다. 감정은 우리의 삶을 찬란하게 채색해 주지만 동시에 우리의 눈앞을 캄캄하게 가로막기도 합니다.


감정이 무엇이느냐는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중 제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지문은 감정이 하나의 정보라는 것입니다. 감정은 현재와 상황을 판단에 쓰일 수 있는,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정보입니다.


감정을 단순히 정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정보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그것을 적절히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보 자체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또 정보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정보와 소음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은 나쁜 것, 이성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서는 이성은 냉혹한 것, 감정은 따뜻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도 합니다. 화양연화라는 영화가 있지요.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장만옥이 한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감정을 따라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감정을 따르는 것이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 의미겠지요. 하지만 이성을 따른다고 해서 삶이 무조건 건조해지는 것은 아니며, 감정이 무조건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감정이라는 정보의 조각이 우리가 상황을 판단하거나, 현재를 만끽하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하려면 우리가 감정의 범람에 압도되는 일이 최대한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술 중 하나가 현재 느껴지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지금 흐르고 있는 감정에 명칭을 지정하는 과정은 이를 언어화하는 것입니다. 언어화하면 우리의 뇌 중 가장 고위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전전두엽 피질이 작동합니다. 이 과정이 성공하면 감정이 발생한 과정과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설명할 수 있게 되면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기다릴 수 있게 되고, 기다릴 수 있게 되면 사라지게 됩니다.


룸펠스틸츠헨은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사라집니다. 감정도 비슷합니다.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서 혼란스러울 때 그 감정의 이름을 부르면 룸펠스틸츠헨이 사라지듯 감정 역시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무엇일까요?


모든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감정의 종류도 학자에 따라 7개에서 수십 개까지 분류되기도 하고요. 차선책으로 가장 좋은 것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최대한 많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감정 어휘라고 합니다.


그냥 기분이 좋다, 나쁘다의 두 가지 감정 어휘만 알고 있는 사람과 기쁘다, 행복하다, 설렌다, 희망적이다, 황홀하다, 유쾌하다, 만족스럽다, 처연하다, 야속하다, 원망스럽다, 화가 난다, 초조하다, 망연자실하다, 겁이 난다, 언짢다, 서운하다 등의 감정 어휘를 알고 쓸 수 있는 사람의 감정 생활은 다릅니다. 자신의 감정을 촘촘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만큼 설명할 수 있을 가능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전반적이며 영속적인 개념이 될 수 있습니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르는 이 밑도 끝도 없는 느낌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갈피를 못 잡게 합니다. 하지만 친구가 이러저러한 말을 한 것 때문에 질투가 나기도 하고, 친구가 잘된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해서 실망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기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는 여러 가지 복합적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복잡한 감정이 지나가게 둘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 어휘를 습득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감정을 여러 어휘로 표현하고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좋은 영화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구나 룸펠스틴츠헨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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