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가지는 특성 중 하나가 눈앞에 있는 것만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알코올성 근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뇌의 작용을 누르는 역할을 합니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뇌의 활성을 높이는 물질의 분비는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뇌의 활성을 낮추는 물질의 분비는 상대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뇌의 활동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불안을 낮춰주고, 이완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효과를 노리고 술을 마십니다.
알코올에 의해 뇌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게 되면 우리가 뭔가에 대해서 골똘히, 혹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취하지 않았을 때는 비교적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생각할 수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서 고려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인지적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 새로운 정보를 뇌에 등록하고, 찬찬히 고려하는 것이 귀찮아집니다. 그래서 그냥 과거의 관성대로 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술버릇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 부분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뇌가 가장 많은 인지적 자원을 소모하는 과제 중 하나가 바로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고, 예상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만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장류의 일부가 그날 사용할 나뭇가지를 들고 다니다는 보고도 있어, 이들도 반나절 정도의 미래는 예상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처럼 1년, 10년 뒤의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는 동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미래 여행은 그만큼 인지 부하가 큰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해서 뇌의 작동 효율이 떨어진다면 우리는 힘이 많이 드는 과정인 미래에 대한 생각, 즉 장기적 조망을 갖는 옵션부터 꺼버립니다. 그 결과 눈앞에 있는 것만 보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장기 조망은 사라지고 단기 조망만 남는 이 현상을 알코올성 근시라고 합니다.
눈앞에 있는 것이 매우 좋은 것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승진을 해서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마시면 승진이라는 기쁨이 더 커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 기쁘고, 술도 더 많이 마시게 됩니다. 만약 승진에 누락되는 반대의 상황이라고 해보죠. 그러면 승진 누락의 실망만 눈에 들어올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안 좋은 일들에만 집착하게 될 것입니다.
장기적 조망이 사라지고, 단기적 조망에만 매몰되어 눈앞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너무나 커 보이고, 중요해 보이고, 그것에 전체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현저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하나가 너무나 현저해 보인다는 것이지요.
위에서 알코올은 우리의 불안을 누그러뜨려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효과 때문에 술을 마십니다. 따라서 기분이 좋을 때 축하주를 마시는 이들도 많지만,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이들도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울적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우울한 사건에 대한 생각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정보를 고려할 능력은 떨어지고, 그나마 미래를 향하고 있던 시선을 발끝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발끝에 놓인 그 우울함의 현저성이 극단적으로 증폭됩니다. 불안감과 우울감은 더 커지겠지요. 이것을 달래기 위해 술을 더 마시게 되고, 다시 또 부정적 현저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혼술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울적하긴 하지만 친구와 술을 마시면 친구들이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알코올의 효과로 인해 인지 부하가 커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 새로운 정보가 등록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이런 외부 효과조차 완전히 사라집니다. 우울한 정보만 찾아 스크롤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3자가 있음으로 해서 이런 효과가 어느 정도 희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적당한 음주는 분명히 삶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들 말하듯이 술을 마시면 솔직해진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술은 우리의 시야에서 장기적 목표를 삭제해 버립니다. 그래서 명료할 때는 언행의 장기적 결과를 고려하면서 조심하던 브레이크가 풀려버리며 하지 말아야 될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솔직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조절할 능력을 잃은 것이라고 밖에 보기 어렵습니다. 솔직해지는 것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고, 그것은 잘 조율된 뇌의 고위 기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명료할 때 우리는 솔직할 수 있습니다. 술을 우리를 솔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