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우울해서 술을 마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술이 주는 이완감이 우울감과 여기 동반되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려 주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은 가장 성공한 중독 물질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85%가 술을 마십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존재하는 190여 개국 중에 주류 판매가 금지된 나라는 10~15개에 불과할 정도로 침투력도 높습니다. 게다가 술이 여러 문화권에서 제례와 의식에 흔히 쓰인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술은 단순한 물질 이상의 종교적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뇌의 활성을 억제하는 물질입니다. 이것은 알코올이 우리 뇌의 활성을 높이는 물질의 분비는 억제하고, 뇌의 활성을 낮추는 물질의 분비는 촉진시키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워지고, 과묵했던 사람의 말문이 트이기도 하니 뇌를 활성화시키는 물질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반대입니다. 중추신경억제제인 알코올이 평소 진중했던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드는 역설은 알코올이 우리를 억제하는 뇌 부위를 억제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를 탈억제(disinhibition)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위에서 알코올이 총합적으로는 우리 뇌의 활성을 억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뇌의 활성이 낮아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졸리고, 이완되고, 평온한 느낌이 들게 될 수 있습니다. 가라앉게 되는 것이지요.
우울감은 기본적으로 불안을 동반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울한 기분은 반드시 염세주의적 시각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조망을 검게 칠해버리게 됩니다. 앞날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지면 당연히 불안감이 상승합니다. 불안은 오지 않은 실체에 대한 두려움이니까요.
알코올이 뇌를 꺼뜨리면 불안도 잠잠해집니다. 그래서 우울한 이들은 술을 많이 찾게 됩니다. 합법적인 물질이고 값도 저렴하고 정신과를 찾는 번거로움도 없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면 이완되는 느낌이 나니 신경안정제와 결괏값은 거의 동일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알코올의 기운이 사라지고 나서입니다. 약물과 달리 용량과 투약 일정을 조절하는 주체가 없는 알코올은 쉽사리 금단 증상이 발생합니다. 술기운이 떨어지면 우울감과 불안감은 더 심해집니다. 그러면 다시 술을 마시게 되고, 첫 잔을 마시면 누그러지는 느낌이 납니다. 그러면서 기분이 움직이는 폭은 커지고, 물질이나 약물 같은 외부의 보조 없이 기분을 조절하는 능력은 더 떨어집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우울감이 모두 우울장애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일상적인 우울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쉽사리 해소됩니다. 조금 우울하더라도 맛있는 저녁 메뉴, 주말에 있는 절친한 친구와의 약속, 새로 릴리즈 되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 등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지나갈, 그리고 이겨낼 수 있는 우울이 느껴질 때마다 술로 대응하면 어떻게 될까요?
알코올은 기분을 더 가라앉게 하고, 그 효과가 사라지면 더 우울한 것만 같아 술을 또 찾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수준의 기분 저하에서 그치지 않고 우울감은 더 커집니다. 결국 우울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을 마셨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마크 셔킷이 한 연구가 있습니다. 그는 매일 음주를 하는 주요 우울 장애 환자 88명을 병원에 입원시킨 뒤 관찰했습니다. 이들이 4주의 입원 기간 동안 단주 상태를 유지하자 임상적 우울장애의 진단 기준에서 벗어나는 비율이 80%에 달했습니다. 즉 이들 중 대다수는 우울해서 술을 마셨던 게 아니라 술을 마셔서 우울했던 것입니다. 정말 우울했던 이들이라면 음주 여부, 단주 기간과 무관하게 우울감이 지속됐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뭔가를 함에 있어서, 특히 그것이 유해한 것이라면, 적당한 핑계를 찾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른바 합리화라고 하기도 하지요. 알코올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든 중독된 이들은 중독 물질을 사용하려는 정당해 보이는 이유를 찾기 위해 총력을 다합니다. 우울해서,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족 간의 불화 때문에,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아서… 하지만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음주 자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독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물질 사용 자체를 목적으로 하도록 우리의 삶의 방향을 비틀어 버립니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 원인을 결과라고 주장하며 인과를 뒤집는 사고방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결과가 원인일 수도 있으며,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빠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4주의 단주 기간을 가져보는 것도 매우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