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번아웃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번아웃은 휴식으로 해소되는 단순한 피로와는 다릅니다. 번아웃이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냉소와 대상에 대한 비인간화입니다.
번아웃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그레이엄 그린 Graham Greene 이 쓴 <번아웃 케이스 A Burnt-Out Case>라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유명한 건축가인데 어느 순간 일상에 염증과 환멸을 느끼고 콩고 깊이 숨어 있는 나병원으로 갑니다. 거기서 그는 완전히 타고 남아 있지 않은 줄 알았던 자신의 창작열을 다시 찾아내고 나병원의 새 건물을 설계하게 됩니다.
번아웃이라는 말은 또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번아웃의 대가인 허버트 프로이덴버거 Herbert J. Freüdenberger 는 독일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일한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개인 병원에서 10시간 근무를 마치고는 무료 진료소로 가서 또다시 일을 했습니다. 무료 진료소가 문을 닫고 난 뒤에도 그는 직원들과 새벽까지 회의를 했고, 집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인 뒤 다시 오전 직장으로 향했습니다. 무료 진료소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번아웃되었다’고 표현했지만, 그들이 그 말을 쓰기 전부터 중독자들 사이에서 번아웃은 장기적으로 헤로인을 투약해 더 이상 주삿바늘을 찌러 넣을 수 없이 타서 쪼그라진 혈관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고 합니다.
번아웃 선별 검사로 쓰이는 매슬랙 번아웃 인벤토리를 고안해 낸 크리스티나 매슬랙에 따르면 번아웃은 소진, 냉소, 비효능감이라는 3가지 차원으로 구성됩니다. 소진은 말 그대로 지치고 고갈되었다는 뜻입니다. 비효능감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으며, 그 어떤 성취감이나 효율을 느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가지 역시 번아웃의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글에서는 냉소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번아웃에 빠진 많은 이들이 일과 관련되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번아웃은 기본적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커질 때 발생합니다. 그 간극을 메우려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둘 사이에 벌어진 틈 사이로 추락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낄 때 우리는 둘 중 한 가지, 혹은 둘 다를 포기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상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며 순응하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냉소에 빠지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하는 일이 그저 무기체를 대하는 일이라면 조금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기계들은 우리의 냉소를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번아웃에 쉽게 빠지는 직군은 보건, 의료, 교육 등 다른 인간을 대상으로 감정 노동을 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냉소적으로 변화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냉소에 빠진 인간은 대상을 비인간화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 환자, 내가 가치 있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을 완전하고 독립된 한 인격체가 아니라 업무나 숫자로 보게 됩니다. 이것은 번아웃에 빠진 이들이 악해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번아웃에 빠지는 이들은 하나 같이 처음에는 매우 의욕적으로 일하고, 헌신적으로 이상을 바라보며 달려왔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다름을 깨닫고, 자신의 힘으로는 현실을 이상까지 끌고 가 닿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절망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절망은 이들을 태워버리고, 이들이 가지고 있던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까지 함께 태워버리며 이들을 냉소에 빠뜨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번아웃을 호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병원에서 진료를 하는 의사들,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하루 종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자기 자신을 갈아 넣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닐 것입니다. 어찌 보면 번아웃은 표적에서 벗어난 이상에서 비롯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무조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 영웅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만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삶은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것이지, 하루하루 자신을 불태워야 하는 전장 속에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