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니든 연구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세월이 지나면서 개발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더니든 다목적 건강 및 발달 연구(Dunedin Multidisciplinary Health and Development Study)라는 대규모 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1972년에 뉴질랜드의 해안 도시인 더니든에서 시작되어 1037명을 꾸준히 추적 관찰하며 써 내려간 연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니든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많은 논문들이 쓰여졌는데 Moffitt 등에 의해서 쓰여진 <A gradient of childhood self-control predicts health, wealth, and public safety>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연구 대상이 되었던 이들이 10세에 했던 성격 검사와 32세에 했던 성격 검사 결과의 추이에 집중했습니다.
2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성격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연구진의 조사 결과 10세와 32세에 한 성격 검사의 상관계수는 0.3으로 나왔습니다. 두 가지가 서로 완전히 같으면 1, 서로 완전히 무관하면 0, 서로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면 -1이라고들 합니다. 따라서 0.3 정도면 서로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서로 완전히 상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정도라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어찌 보면 애매한 숫자입니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10세 때의 성격이 어느 정도는 ‘안정성’을 갖고 유지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관계수가 1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변화가 일어날 여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10세 때는 성격 조절을 가장 못하는 5분위에 있던 아이가 성인기에는 성격을 잘하는 2,3분위로 이동하는 일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 연구 결과가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성격이라는 것은 DNA에 각인되어 있어 타고나는 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되니까 말입니다. 어렸을 때는 조금 감정의 변화가 크고, 그 진폭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았던 아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얼마든지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감정 조절이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솟아오르는 감정을 다른 것으로 치환하거나, 생겨나는 감정을 매우 효율적으로 억누르거나, 발생한 감정을 무시하고 내 할 일을 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일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 조절의 정의는 “어떤 감정이든 마음 것 느껴도 괜찮다는 허락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이 어떤 감정이 발생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수행 능력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우리 표현으로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진 “Keep Calm and Carry On”이라는 영국의 선전 문구가 감정을 무시하고 나아가라는 명령의 대표격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좋은 것일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그저 억누르고 외면하라는 명령이 통용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감정에 크게 휘둘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감정이 발생해도 그것의 유용한 부분은 최대한 취하고, 그것으로 인해 동요되는 정도를 줄일 수 있다면 감정은 매우 가치 있는 정보로서 작동할 수 있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며,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 줄 것입니다.
나이가 어릴 때는 불안이나 슬픔 같은 부정적 감정이 생겨났을 때 이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고 완전히 매몰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은 경험을 쌓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적절한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게 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명의 독립된 성인으로서 성숙해지는 과정이겠지요.
이 연구가 10세, 32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한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32세라고 하더라도 42세에 더 감정 조절을 잘하게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요. 그저 우리는 감정을 마음껏 느끼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대응할지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 것입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외면하는 대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