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라는 정체불명의 은어가 투자시장에서 정통성을 확보한지도 꽤 되었다. ‘존버’란 애초에는 ‘X나 버로우(burrow)’라는 은어에서 시작되었다. 스타크래프트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버로우(burrow)’의 뜻을 알기 위해 영어사전을 찾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00년 IT버블 붕괴 이후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의 끝없는 상승세를 경험하면서, 원래는 부끄러운 일 등의 부정적 사유로 인해 이른바 ‘잠수 타는’ 상황을 설명하던 이 은어가 어느덧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본전을 회복할 때까지 손절매하지 않고 버티는 ‘buy and hold’ 전략을 지칭하는 표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존버’는 ‘X나 버로우’에서 ‘X나 버티기’로 바뀌다가, 또 다시 ‘존경스럽게 버티기’로 의미가 바뀌면서 이제 개미들에게는 주식시장 성공의 금과옥조가 되었다. 주식투자에서 아무리 손실이 나도 손절매로 포기하지 않고, 5년이고 10년이고 버티어 결국에는 이익을 내는 인내와 의지, 불굴의 정신을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존버’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존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말하자면 이제는 주식시장에서 아무리 ‘존버’를 해도 투자 수익을 거두거나 손실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금융환경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22년 주식시장의 하락으로 이른바 '물려 있는' 투자자들에게는 분명 좋지 않은 소식일 터인데,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논의하기 위해서, 우선 ‘존버’ 전략이 성공을 거두기 위한 기본 요건을 확인해 보도록 하자. 논의의 편의를 위해 가장 대중적인 투자시장인 주식시장의 장기 시계열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1922년대부터 2021년까지 100년간의 다우존스 산업지수의 시계열 자료이다. 참고로 2022년 현재 진행되는 자산붕괴 양상은 반영되지 않았다.
다우존스 지수 100년 차트 (1922~2021)
위 그래프에 따르면, 다우존스 지수는 1982년부터 2021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참고로 그 유명한 핑퐁외교로 미중수교가 된 시점이 1979년이다. 현재 투자자 중 노년층을 제외한 대부분이 미중수교 당시에 매우 어린 나이였거나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현재 투자자들이 지금껏 경험한 투자환경은 무조건적인 상승 일변도의 금융환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끝없는 인플레이션과 유동성의 확대, 그리고 자산시장의 무한 상승 이외의 투자환경은 현재 모든 투자자들에게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상상의 세계나 전설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그래프에서 1929년부터 1932년까지의 대공황 이후 1950년대 초까지 금융시장이 회복되는 상황이나,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다우존스 지수가 장기간 횡보하는 상황에 주목한다면 ‘존버’가 항상 주식투자의 금과옥조는 아니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대공황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당신이 1960년대 중반의 어느 시점에서 주식투자를 시작해서 ‘존버’를 했다면 향후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상시 손실을 경험하거나, 기껏해야 ‘원금’만을 겨우 건졌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2022년 현재의 경제환경이 1960년대 중반 내지는 1970년대 초반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현재의 증시 상황을 1929년 대공황 직전과 유사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일단 후자의 대공황론은 차치하더라도, 오늘날의 금융환경은 1960년대 및 1970년대와 매우 유사하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1964년의 통킹만 사건으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을 떠올리게 되고, 또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하여 결국 1971년에 태환 달러가 종말을 맞은 이후에 제1차 및 제2차 오일쇼크로 이어지는 지난 역사가 현재 무제한적 양적 완화 및 유가 폭등 상황으로 재현되면서 매우 인상적인 기시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아래 그림과 같이 해당 기간에 주식시장이 장장 10년간 박스권에서 횡보하고 있었음을 확인한다면, 과연 ‘존버’가 앞으로도 유효한 투자방식이 될지 서서히 의심하게 될 것이다.
다우존스 지수와 연준 기준금리의 관계 (1966~1974)
더욱이 과거의 역사에 기반한 유추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2022년 연준의 금리정책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현재의 금융시장이 향후 극심한 변동성을 겪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2022년 중반부터 구리(Dr. Copper)를 위시한 실물자산들의 급락이 이어지고 있고,
구리 가격의 변화 추이
더욱이 아래 그래프와 같이 코로나 이후 두 번째 장단기 금리 역전이 진행되면서 임박한 금융위기의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유로화의 가치가 연일 폭락함에 따라 EU가 금리 인상의 고육지책을 취하게 되고, 이로 인해 EU의 약한 고리인 PIGS와 동유럽 국가들에서 유럽발 금융위기가 촉발될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지금 미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과 울트라 스텝으로 대표되는 경악스러운 금리 인상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급격한 경기 침체로 인하여 최근 노무라 증권이 예측하는 것처럼 내년인 2023년에 금리 인하의 가능성도 다시 대두되면서 2022년 하반기 현재의 세계 경제는 가히 예측 불허의 양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연준 기준금리와 장단기 금리 역전
여기서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경기 하강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의 진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면은 일견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노무라 증권의 금리 인하 예측은 일반 경제주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현재의 압도적인 금리 인상 기조가 갑작스럽게 금리 인하 기조로 바뀌어야 할 정도로 극단적인 경기 침체가 내년에 나타날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인플레이션 양상과 미국의 정부부채 상황을 고려하면 경제 부양과 긴축의 발작적인 반복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며, 이는 곧 향후 주식시장이 박스권에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장장 10년에서 20년간 횡보할 가능성까지도 제시한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의 주식시장 역시도 마치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다우존스 지수의 양상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극단적인 변동성과 저성장의 시대이다. 이제 금리는 요동치고 호황과 불황이 발작적으로 교차하기 시작한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10년 이상, 심지어는 20년 지속한다고 하면, 과연 개미 투자자들이 단지 ‘존경스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버티는(존버)’ 전략으로 원금 이상의 의미 있는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물론 인류의 문명과 경제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단계로 성장해 나아간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과 경제에서 분명히 정체기는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의 수명이 그 정체기보다 더 길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제 ‘존경스러운 버티기(존버)’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