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과거 미국의 1970~80년대의 인플레이션과 비견되는 가히 40년만의 인플레이션으로 불리고 있다. 당시 미국과 전세계는 중동 전쟁과 그에 따른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으며 전례 없는 물가 앙등을 경험하였고, 결국 미 연준이 20%의 기준 금리라는 극약 처방을 하는 상황에 이르면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2020년대 초반인 현재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지독한 기시감을 주는 인플레이션의 역사가 다시금 재현되고 있다. 과거의 중동 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치환되었고, 이제는 OPEC 대신 러시아가 전세계 에너지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연준은 또 다시 세계 경제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 빅 스텝에서 자이언트 스텝으로, 그리고 이제는 울트라 스텝으로 발걸음을 바꾸면서까지 전례 없는 수준의 기준 금리 상승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전세계의 경제주체들은 현 연준 의장 제롬 파월(Jerome Powell)이 과거 폴 볼커(Paul Volcker)의 강력한 리더십을 재현하면서 인플레이션의 화마를 진화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숨겨진 정황을 추적하다 보면, 놀랍게도 작금의 인플레이션은 지극히 구조적인 요인에 따른 만성 질환이며, 해당 구조적 요인이 바뀌지 않는 이상 미 연준의 어떠한 정책도 인플레이션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구조적 요인이란 첫째 1990년대 이래 세계화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던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와해되고 있으며, 둘째 이러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와해는 전쟁이나 기후변화 등의 일시적 또는 외생적 이벤트로 야기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설계와 운영 방식의 구조적 결함에 기인한 것이며, 마지막으로 글로벌 경제의 설계자와 관리자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존의 구조적 문제를 스스로 수정할 수 없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우연히 또는 실수로 일어난 재난이 아니라, 그 발생에 대한 고의 내지는 미필적 고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한 결론의 이론적 기반은 노벨경제학상에 빛나는 통화주의자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에게서 찾을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먼
밀튼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산출물보다 통화 공급이 더 빨리 늘어날 때에만 나타나고 나타날 수 있는 화폐적 현상이라고 하였다. "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 in the sense that it is and can be produced only by a more rapid increase in the quantity of money than in output."이라는 원문에서는 특히 “only”라는 표현이 드러나 있다. 통화 공급과 경제 성장의 두 가지 요인만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밀튼 프리드먼은 특히 통화 공급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급격한 경제 성장은 산업혁명과 같이 특별한 시대에만 제한적으로 등장했던 특별한 이벤트였던 반면, 통화의 급격한 확대 즉 화폐의 타락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역사에서 끊임 없이 반복되어 왔던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은 본질적으로 화폐적 현상이다. 방만한 통화정책, 과도한 머니 프린팅(money printing)이 인플레이션의 본질이다. 사실상 1965년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 초반에 마무리된 인플레이션의 시작은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종말, 즉 달러의 무한 인쇄를 허용한 정책의 도입이 그 원인이었다. 물론 지난 40년간은 지속적인 머니 프린팅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와 기술 혁신으로 자산 버블의 팽창과 물가 안정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경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 낸 신비로운 기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황홀경이 끝나고 지난 40년 간의 유동성 파티의 계산서를 받아 들고 있는 우리는 몰려드는 유동성의 쓰나미를 보면서 과거의 신비로운 경제 현상들이 마법이 아니라, 단지 문제를 뒤로 미루어 후세에게 떠넘긴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우리의 경제구조와 철학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결코 자이언트 스텝이나 울트라 스텝 등 금리 인상 따위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이라는 75bp 금리 인상으로 전세계 증시가 대대적으로 상승했다. 이는 병적인 현상이다. 이미 양적 완화라는 스테로이드에 절어 있는 글로벌 경제는 이제는 자이언트 스텝에 위축되기 보다는 또 다른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을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이제 끊임없는 유동성 확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했으며 그 결말은 결국 전쟁과 파괴,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초장기 인플레는 필연이다”라는 제목의 시리즈는 이번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우리 모두가 가지는 근원적인 질문들 즉 “우리가 겪는 인플레이션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 것이며,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원적 해답을 찾고자 한다. 분석의 방식은 우선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인플레이션 경험을 재조명하면서, 당시 인플레이션의 등장 원인과 그 해소 과정을 반추하고, 그러한 통찰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insight)를 우리 시대의 인플레이션에 적용하는 것이며, 이 분석은 결국 현재 주류(mainstream) 미디어나 정책 담당자들이 주장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단 현재의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본질과 그 근본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비록 우리가 지금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을 저지할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주류 미디어나 정책적 프로파간다에 속아 우리 개개인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키는 잘못된 결정과 그에 따른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어떠한 권력자나 전문가가 제시하는 장미빛 희망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과거에는 진실을 숨겼고, 이제는 진실을 얘기하기에 너무 늦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의 머리로 생각하고 우리의 발로 일어나는 것 이외에는 없다.
이번에 프롤로그로 시작하는 본 시리즈는 이후 “중국과의 결별”을 시작으로, “반세계화와 지정학적 충격”, “제4차 산업혁명”, “국가 부채의 저주” 등 다양한 관점에서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왜 불가피한 현상이며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는지 하나씩 밝혀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지막에는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변해가고, 이러한 격변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작은 생각들의 편린을 정리해 나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