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면 내가 보인다.

by 마음채

가끔 일기장을 통해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며칠 전에는 직장 동료와 여행을 계획하며 설렜던 기록을 읽었고, 최근에는 결혼 소식과 함께 받은 청첩장을 보며 묘한 감정이 밀려왔어요. 그날의 설렘, 축하의 마음, 그리고 지나간 시간들이 함께 떠오르니 감동도 더 해져 정말 만감이 교차했어요. 이처럼 일기장은 저의 순수한 감정과 일과가 떠오르게 해주는 소중한 동반자입니다.


처음 일기장을 작성한 건 초등학교 겨울방학 때입니다. 한 달 동안 꾸준하게 일기를 작성한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연필로 종이를 긁는 사각사각 소리, 생각이 그대로 적히는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마치 내 안에 또 하나의 ‘방’을 가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넓은 줄에 큰 글씨로 또박또박 적어나간 겨울방학 일기장이 지금은 없기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챙겨오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그때의 즐거움이 내 안에 남아 지금의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씨앗이 된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일기를 씁니다. 특별한 형식은 없어요. 제가 일기장을 작성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적는 것입니다. 좋았던 것, 부끄러웠던 일도 솔직하게요. 어떨 땐 내용이 짧기도 하고, 어떤 날은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특히 실수를 한 날의 기록은 짧아집니다. 자랑스러운 일은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고 싶지만, 속상했던 일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마음 같아요. 그래도 꾸밈없이 적어나간 일기장은 서서히 저의 오랜 친구가 되어갑니다.

기록하지 않는다면 기억과 감정은 끝없는 강물처럼 흔적도 남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기록은 남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무뎌지고, 왜 그날 그렇게 울었고 웃었는지도 잊게 되더라도, 일기 속의 한 문장은 그날의 나를 다시 데려옵니다. 사진도 기억을 남기지만, 글만큼 마음을 정직하게 담아내는 매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하루,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남기기 위해, 더 섬세한 언어를 찾는 과정에서 저라는 사람이 더 정교해지는 느낌도 듭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참 즐깁니다. 그래서 저라는 사람을 위해서 일기 적는 시간을 꼭 마련해 둡니다.


일기를 다시 읽는 일은 결국 내 마음을 다시 돌아보는 일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감정이었나’,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했고, 무엇이 나를 웃게 했는가?’ 이 질문들을 통해 나는 나를 좀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불안, 걱정, 맑아지는 정신, 안도, 결심이나 등불같은 희미한 희망까지. 모든 감정이 기록 속에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책을 보고 느낌이나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상에 젖은 날도, 실수를 후회한 날도,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아. 해봤으니 괜찮아’라고 스스로 다독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좋으면 그대로 좋고, 잘 안되면 훌훌 잘 털어내기도 합니다.


일기는 결국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한 작은 연습입니다. ‘오늘 나는 어땠지?’라는 꾸준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하루는 더 이상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남습니다. 그 기록이 쌓일수록,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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