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바보 딸이 되었다.

by 마음채

SNS에서 아빠와 딸의 다정한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교복을 입은 딸의 가방에 곰돌이 인형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그 옆을 아빠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어요. 요즘 세상에 딸의 등굣길에 동행하는 아빠의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볼 수 있을까요. 그 영상에는 배경 음악도, 특별한 연출도 없었지만 저는 그 안에서 밝고 따뜻한 멜로디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자꾸만 시선이 갔습니다.


저의 유년기에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많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가정을 책임지시느라 늘 바빴고, 어린 딸인 저는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어려웠어요. 어릴 적에 우리는 대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경상도 아빠와 어린 딸은 대화 방향도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만 아꼈을 뿐, 마음까지 멀지 않았어요. 운동장에서 함께 산책하던 여름밤, 독서 통장으로 보들보들한 갈색 곰돌이 인형을 사주신 날, 매년 생일마다 함께 한 가족, 취업 날 아버지의 응원, 초등학교 학예회를 함께 준비하던 시간, 새해 일출을 한라산에서 함께 바라본 날, 그렇게 작은 일상들이 쌓여 가족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 저는 가족 중에 아버지를 더 좋아합니다. 불효스러운 말이지만, 가끔은 아버지가 떠나실 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요. 아버지는 딸바보라는데, 저는 반대로 아빠바보딸이 되어갑니다. 첫째들이 흔히 그렇듯 늘 스스로 해결하려 애쓰고, 무너지고 싶을 때조차 자존심으로 울음을 삼켰던 접니다. 그럴 때 세상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언제나 아버지였어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던 날, ‘어 왜?’ 하며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괜히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긴장했는데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조언을 주고 도와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저는 감동으로 떨렸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으셨어요. 물으면 묵묵히 도와주시고, 실수를 해도 다그치지 않았어요. 그저 믿어주는 눈빛으로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눈을 돌리고 싶은 순간에도 앞을 바라보고 걸어갈 수 있었던 건 세상에 땅을 단단히 딛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 덕분에 저는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글썽거렸어요. 아버지와 통화할 때면 든든한 고목을 만나는 기분이에요.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는 나 자신을 떠올립니다.


이상적인 부녀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가족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해서는 들은 말이 적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알 것 같아요. 아버지와의 관계는 딸의 사회성, 독립성, 자존감 형성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요. 그래서 ‘눈높이를 맞추어 함께 놀아주는 아버지’가 이상적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면,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웃는 아버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을 배워나갈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여전히 아버지입니다. ‘어, 왜?’ 하며 전화를 받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색과 모양일까요. 전보다 약해진 몸으로도 딸의 부탁을 들어주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 어떤 사랑보다 깊고 따뜻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아버지도, 저도 외로웠을지 모르지만 서로의 마음을 닮아가는 지금이 참 감사하다고. 이제는 어른이 된 딸임에도, 앞으로는 아버지가 전보다 더 자주 떠오를 것 같은 앞으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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