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때때로 저의 예민함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낯선 환경에서는 긴장합니다. 머리로는 ‘이건 내 기질이야’하고 이해하면서도, 감정이 쉽게 요동치는 자신이 미워질 때가 있어요. 그러나 예민함은 단점이 아니라 기질, 즉 타고난 반응 방식입니다. 섬세한 감정과 빠른 공감 능력은 예민함의 뿌리이며 그것은 스스로를 존중할 때 건강한 힘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민함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많아질수록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기 어려워져요. 그럴 때는 무심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크게 상처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들의 태도가 가끔은 단단한 갑옷처럼 느껴집니다. 사전에서 ‘무심하다’라는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쓰지 않거나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덜 놀라고, 감정의 파도에 덜 휩쓸리며 눈앞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는 사람. 그런 모습을 보면 파도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티는 바위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무심한 사람들도 사실은 상처를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단단함 뒤에는 저와 같은 불안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와 같은 예민한 사람은 자신의 섬세한 감정과 생각의 깊이 속에서 숨이 차고, 그 무게를 외면하고 싶어서 무심해지고 싶다고 느낄지도 몰라요. 저는 ‘괜찮을 거야’라는 희망을 얻기 위해, 잠시 마음의 스위치를 끄고 싶은 순간이 자주 옵니다.
예민한 사람은 고민이 많으며, 감정의 잔재가 오래 지속됩니다. 저 역시 그런 시기를 지났습니다. ‘왜 나는 생각이 많은 걸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할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은 늘 제 자신감을 흔들곤 했습니다. 힘들 땐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습니다. ‘유별나다’는 말이 돌아올까 두려워, 마음속의 말을 자주 삼켰어요.그럴 땐 오랫동안 걷다가 지쳐 쓰려질 것 같을 때 집으로 돌아와서 잠이 드는 게 저의 방법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알았어요. 예민한 사람의 이면에는 상처받기 싫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의 예민함을 이제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있다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감정에 민감하다는 건 타인의 마음을 세심히 살필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더 의의를 두면 긍정적으로 변화할 거라 봅니다. 억지로 생각을 줄이고 자책하며 공감하지 않고 선을 긋는 것보다, 자신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보세요. ‘나는 생각이 많고 깊다.’, ‘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나는 방어기제가 있다.’ 등. 자신의 속도를 이해하고, 감정의 언어를 배우며, 필요할 때는 도움을 구하는 용기를 내는 것-. 이건 제가 예민함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괜찮습니다. 내면과 끊임없이 대화하다 보면, 그 예민함은 언젠가 나를 지키는 섬세한 감각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