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키소스와 에코, 사랑

by 마음채

우리는 모두 나르키소스의 신화를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생을 마감한 청년. 그 곁에는 나르키소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채 메아리로 남아 사라진 에코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쓸쓸하고, 그리스 신화 특유의 어두운 비극미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가끔 이 이야기 속에 숨은 질문을 다시 떠올립니다. 과연 나르키소스가 사랑한 것은 ‘사람’이었을까? 그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또한 에코의 사랑은 헌신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부정이었을까. 제 생각에 어느 쪽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르키소스와 에코는 진정으로 무엇을 사랑했을까요. 사랑을 한 건 맞을까요. 어쩌면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달콤한 황홀감, 그 감정에 흔들리는 자기 모습이란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늘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어요. 예전에는 불편했지만, 요즘은 먼저 다가가 먼저 말을 걸어봅니다. 점점 서먹함도 풀리고 말 걸기가 편해짐을 느낄 때 마음 한 칸이 가벼워졌어요. ‘이 감정을 느끼는 나도 괜찮다’. 그 순간, 묘한 친근감도 생기고, 되려 더 반가워집니다. 그런 제가 더 좋은 것은 나르키소스나 에코와 다른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르키소스처럼 자기만 바라보는 고립된 사랑도, 에코처럼 타인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는 중도가 중요하듯이, 자신의 장점을 사랑하되, 주변도 소중히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돌보되, 주변의 온도를 느낄 줄 아는 것. 우리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사랑을 ‘좋은 면만 보는 감정’이라 생각하지만, 사람은 입체적입니다. 누군가에게 장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그런 모순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작은 순간들. 이 장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건 결국 같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랑을 할까?’. 나르키소스의 연못에 비친 얼굴이 아니라, 그 연못을 바라노는 나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세요. 그 눈 속에서는 나도 있고, 타인도 있고, 사랑의 온기도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보세요. 점차 세계가 아름답고 맑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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