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주에서의 짧은 유학생활을 거쳐 한국에 돌아와 2015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상담소에 처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심리학이나 심리 상담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 갈 때, 심리학과에 진학할까도 생각을 해봤지만, 심리학과에 가기엔 내 수능 성적이 턱없이 낮았고, 점수와는 또 상관없는 두려움이 앞섰다. 왜냐하면,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내가 얼마나 나에 대해 깊이 알아갈지, 동시에 나의 가정환경이나 부모님에 대해 알아갈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이 공부이지 나에게는 어두운 지하실의 알아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성장배경 속에서 나의 부모님의 역할이 어땠는지, 그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현재의 내가 되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있었고, 나의 성장배경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심리학 공부를 하게 된다면 부모님에 대한 내 원망과 분노가 얼마나 겉잡을 수 없이 커질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연민하고 동정하게 될지 짐작되었기 때문에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늘 다가가고 싶다가도, 뒷걸음치게 되었다.
어릴 적 부터 나는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많이 지나왔기 때문에, 심리학과 상담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많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결함과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치욕스러운 일이다. 내게도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그 결함을 인정하고 치욕스러움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하나밖에 없는 가장 친한 단짝 친구가 나로 인해 고통스럽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친구의 힘들다는 말과 결과적으로 절교하게 된 일이 나를 상담실 문 앞으로 끌고 가게 했다. 그때 나는 단순히 친구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싶고, 관계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에 가기에 앞서, 먼저 인터넷 검색을 했다. 상담에 관심은 있었지만 내가 직접 받기에는 어쩐지 꺼려지고 내게 대단한 결함이 있다고 느껴져서 검색을 하면서도 두근두근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일단 검색을 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블로그였다. 여러 글들을 클릭해 보다가, 집에서도 가깝고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상담자의 글에 마음이 갔다. 즉시 블로그 글에 댓글을 달았다.
"저... 상담 문의 드리려고 하는데요.."
- 네 어떤 문제로 힘드신거에요?
"음.. 그냥 여러가지 복합적인데.. 제가 상담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 어떤게 가장 힘드신지 얘기해주시겠어요?
"친구랑 계속 싸우고, 집착하고, 너무 죽고싶어요. 근데 이정도로 힘든걸로 상담 받아도 되나요?"
- 죽고싶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상태이신 거에요. 상담 진행 안내 도와드릴게요.
상담소에 처음 문의를 할 때, 나는 내 상태가 아주 가볍고 스스로 회복될 만한 문제라고 여기고 있었다. 상담 이라고 하면, 인생에서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을때, 예컨대 부모나 자식의 죽음 이라든지, 이혼이라든지, 시한부 병에 걸렸다던지, 자해나 자살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던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거의 팔 하나, 다리 한 쪽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정도의 힘듦을 가지고 상담에 가도 될까? 나때문에 더 힘든 사람들이 상담을 받지 못하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들은 대답은, 내가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는 말이었다. 죽고싶다는 마음, 그것은 초등학교 무렵부터 지속적으로 든 마음으로 내겐 별 것이 아니었다. 늘상 드는 일상적인 마음이었을 뿐, 치료해야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상담 예약을 하고, 상담 비용에 대해 들으면서 나는 적잖히 놀랐다. 1회기에 10만원? 무슨 앉아서 얘기 들어주는 것이 10만원이나 한단 말인가. 나는 그 때 막 알바를 시작한 무렵이라 상담자에게 그 정도 비용을 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 말에 상담자는 5만원으로 할인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이런 호의가 놀랍고 좋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처럼 힘든 사람을 위해서 할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한다는 생각. 이 생각은 처음에 내가 했던 생각과는 상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같이 별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상담을 받아도될까? 라는 생각과, 할인을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당연히 나같은 사람에게 할인을 해줘야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 여전히 나는 이러한 나의 모순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것도 내 병의 증상 중에 하나라고 인지할 뿐. 그렇게 나의 첫 상담 예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