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같은 이별

by 발작가

어떤 이별은 너무 아프고,

어떤 이별은 너무 슬프고,

어떤 이별은 어이가 없고,

어떤 이별은 무덤덤하고,

어떤 이별은 후련하고,


어떤 이별은 선물과도 같다.


나는 최근 3년간 함께했던 상담선생님과의 이별연습을 하고 있다. 최근 몇 주째, 매일 밤 술을 마시며 어떤 날에는 자해를 했다. 나에게 이 이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과는 내 병이 다 나을 때 까지 조금 더 긴 시간 함께하는 것이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입장과는 달리, 선생님에게도 스스로의 삶이 있고 커리어를 위해 관둬야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보지 못한 선생님의 삶. 나는 그간 스스로의 입장에서만 선생님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내게 처음 이별을 예고한 것은 한달여 전이다. 우리는 6월 말일까지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니, 총 두 달여의 시간을 내게 준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매일같이 마셨으며, 가끔은 자해를 하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밤마다 술에 취해 이런저런 이메일을 보냈다. 고통스럽다고. 왜 당신은 날 두고 떠나는 것이며, 난 왜 또다시 버려져야 하는 것이냐고. 그렇게 글에 고통을 꾹꾹 눌러담아 매일 밤 울부짖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어쩌면 좋은 경험이 될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좋은경험이요? 이 버려지는 경험이 좋다고요? 그때엔 이해하지 못했던 말을. 한 달여가 지난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다.


상담 선생님도 누차 이야기 했지만, 날 정말 버릴 생각이었고 내 상처받을 마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상담자의 윤리 때문에 3~4주 전에야 말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한달여의 시간 안에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임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별 연습’의 시간을 준 것이고, 우리는 지금 그 연습을 함께 하고 있다.


선생님의 배려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7월부터 임상심리 수련에 들어가지만, 올 연말까지 짬을 내어 나에게 온라인 상담을 제공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 많은 배려들에도 울며불며 길길이 날뛰었다. 버려질까 불안에 떨고 선생님의 마음을 의심하고 비아냥거리고 떼를 썼다.



몇일 전 밤에도 역시나 나는 이별에 대한 두려움에 울부짖으며 이메일을 보냈다. ‘선생님,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제가 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짧게라도 답변을 주세요.’


반나절 정도가 넘어서야 선생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생각지도 못한 긴 장문의 답변이었다. 선생님은, 삶이라는 여행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여행객이에요. 좋든 싫든 함께 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말 잘 맞아서 끝까지 함께 가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우리가 하나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을거에요. 그들 모두는 각자만의 길이 있고, 언젠가는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는 것이 여행이니까요. 언젠가 올라타고, 언젠가 내리는 그런 사람들과 ㅇㅇ씨가 여행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인 것 같아요.


선생님의 답장을 퇴근 후에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여행객.. 삶은 여행.. 어찌보면 참 흔해빠진 말인 것 같기도 하면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선생님의 여행 이야기에 우리가 겪고 있는 이별의 무게가 잠시나마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날 밤엔 술도 자해도 없이 잠들 수 있었다.


이제야 왜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이 이별이라는 것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엔 수많은 이별이 존재하고, 어떤 대상과의 어떤 흐름의 이별인지에 따라 겪어야 할 것들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나의 경우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상담사와의 이별인 것이다. 그것도 2달여의 시간도 미리 주어졌으며, 나는 선생님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참 선물같은 이별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며, 보통 사람들은 많은 이별을 경험하지만, 이렇게 미리 알리고 연습하는 기회까지 제공해주는 이별은 거의 없을 테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습도 없이, 그 이별을 온전히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하는 것은 아닌지.


물론 나에게 연습하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도,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별의 과정 동안 내가 느끼고 아파하는 것들을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를 받으며 겪을 수 있는 이별은 드물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의사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늘 이별앞에 버려지는 두려움 때문에 공포감을 느끼는 내가, 비교적 안전하고 신뢰로운 좋은 이별을 경험하겠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한 달여의 시간이 더 남았다. 이 한달간의 시간동안에는 내가 조금 더 힘을 낼 타이밍인지도 모르겠다. 5월 한달 간 나의 온갖 징징거림과 울부짖음을 선생님이 감당해주셨으니까. 이젠 나도 조금은 더 성숙하게, 이별이라는, 삶이라는 여행을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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