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거든 술독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어릴 적 학교에서는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라는 뜻으로 일기 쓰기를 강요했다.
일기라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생각과 느낌을 솔직히 적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언제나 선생님께 제출하고 사인을 받아야 했다. 사적이지 않은 그 과정이 의문이었지만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일기는 숙제처럼 형식적인 하루의 일과였을 뿐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나의 자정은 언제나 집에 있었다. 술자리에 나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아저씨가 되고, 가장이 되고, 나의 아버지 같은 모습이 되어갔다.
그 평범한 일상은 나를 일터로 내모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의 통장에 꽂히는 초라한 액수를 항상 기억하라는 듯 많은 것들이 발목을 잡았다.
나의 자유로운 영혼이 꼼짝도 못하고 자본 경제라는 거인 앞에서 비굴하게 쓰러져 숨을 헐떡였다.
달려오는 버스에 뛰어들고 싶었던 충동을 참아내고 아파트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떨어지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했었다. 운전을 하며 파생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핸들을 틀어 난간 아래로 떨어져 버리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나>라는 존재를 세상 밖으로 외치면 크게 얻어터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삶에 길들여진 듯 마음이 고요해졌다. 아니 고요해졌다는 고상한 표현보다는 짓밟혔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내가 선택한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족들 얼굴 볼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일터에 몸을 던진다. 아이러니하고 이율배반적이다. 가족을 위해 가족을 보지 못한다니…. 이 세상은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으면서도 개인에게는 인과관계의 정확한 논리를 요구한다.
세상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 세상의 일부이니까.
어둠이 깔리고야 주섬주섬 <나>를 챙겨서 귀가하는 일상에서 이제는 옳고 그름을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다. 이상하게 그럴수록 서글퍼졌다. 차라리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퇴근길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주차장에 들어가며 항상 주차하던 곳으로 향한다. 다른 놈이 먼저 주차를 해놓아서 주차장을 한 바퀴를 더 돌아야 한다. 짜증이 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입구에 비어있던 곳으로 차를 돌리지만 그새 다른 놈이 주차를 해놓았다. <젠장할 도시!!!> 라며 욕을 한사발하고 겨우주차를 한다. <삑!>하며 차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면 내가 언제 욕을 했냐는 듯 쿨하게 엘리베이터를 탄다. 도시의 가증스러움이 몸에 배이는 것 같다.
아파트의 어두운 복도를 지날 때마다 불이 켜진다. 반갑지는 않다. 아무래도 아직은 내가 고수가 덜 된 듯한 느낌이다. 아파트의 자동센서로 켜지는 불빛이 나를 반겨준다고 느낄 정도는 되어야 인생을 아는 고수가 될 것만 같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항의 작은 불빛이 나를 반긴다. 그 불빛은 분명 나를 반기는 것이 맞다. 내가 좋아하는 열대어에 내가 세팅한 불빛이다. 이마저 켜두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저녁을 먹지 못할 때도 많지만 먹더라도 집에 오면 허기가 진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하루의 노곤함을 모두 씻을 것 같지만 항상 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다. 그것은 힘없이 남아있는 통장 잔액을 위협하는 일이다. 차라리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것이 현명하다. 다행히 나는 편식을 하지 않고 내가 먹을 정도의 요리도 할 줄 안다.
전자레인지의 힘을 빌려 뚝딱 밥상을 차린다. 밥상이지만 술상에 가깝다. 식탁이 있지만 편하게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쇼파 앞의 작은 테이블이 제격이다. 끝으로 냉장고에 있던 소주를 꺼내어 술상 앞에 앉으면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오늘도 잘 버텨낸 안도의 호흡이며 하루 중 가장 자유로운 시간을 앞둔 설레는 감탄사다.
소주 병을 돌리며 들리는 단추 뜯어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좁은 잔에 떨어지며 울리는 액체의 물리적인 소리가 영롱하다. 요놈을 마실 생각에 가슴이 요동치고 설렌다. 연애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마누라는 내게 이런 설렘을 준 적이 없다. 행복감이 발끝부터 시속 300km로 달려온다. 혀끝으로 입술을 한번 적시고 술잔을 털어 넣는다. 소주의 <쌔~> 한 기운이 입안 가득하다. 인생을 마시는 것 같다. 목젖이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댐의 수문이 열리듯이 목구멍 속으로 쏟아진다. 명치까지 떨어지는 느낌을 온전히 즐긴다. 과학시간에 음식물을 삼키면 위로 들어가 소화가 된다고 배웠지만 아닌 것 같다. 이놈은 온몸으로 퍼지면서 나를 간지럽힌다.
잠깐 뒤로 기대며 쇼파에 몸을 맡긴다. 그러고는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번 한숨은 오늘 있었던 나쁜 기운을 모두 뱉어내는 듯하다. 짧은 시간 나를 달래고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멍하니 TV를 보며 그저 한 잔씩 마신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다. 나를 마냥내려놓고 쉬는 이 시간이 부끄럽지 않다. 그래봐야 30분 정도다.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오늘 있었던 일을 검토하고 반성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운다. 머릿속으로 만 하고 잊어버릴 것 같은 것은 메모를 한다.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간단하게 글을 서서 인스타에 올린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글도 많이 써진다. 하루 중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이다.
다행히 술을 마시며 오늘을 둘러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이 시간이 끝나고 마지막 한 잔을 털어 넣으면 나의 하루를 보내줘도 아쉬움이 없다. 습관적인 음주이기는 하지만 이마저 하지 않으면 내가 있을 공간이 한곳도 없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넉넉하게 벌어다 주지 못한다는 가장의 죄책감을 위로하는 것은 늦은 밤 소주 한 잔뿐이다.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다. 말 할수록 창피해지는 늪이기 때문이다.
퇴근 후 딱 소주 한 잔이면 나는 다시 충전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 시간만큼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종교는 없지만 이런 기도는 한다)
그 한 잔이 나의 일기가 되어 내 작은 역사 속에 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