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거든 술독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대한민국에서 군입대는 남자가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스스로의 안녕을 위해 군대를 피하려 하지만 대다수의 바른 청년들은 국민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군대에 입대한다.
고교시절 역사 선생님이 전쟁에 대한 수업을 하다가 이야기하셨다.
<여러분들 엄마 계시죠? 엄마 계신 분 손들어보세요!> 거의 모든 친구들이 손을 들었다.
<여러분! 여동생이나 누나 있는 분 계시죠? 손 한번 들어보세요!> 절반 정도의 친구들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말을 이으셨다.
<남자가 군대를 가지 않는 것은 전쟁이 발생했을 때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남에게 구걸하는 겁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내 손으로 지켜야 하는 겁니다! 남자들이 무능해서 대한민국의 여자들이 유린당한
수많은 역사를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꼭! 군대 가십시오!>
원채 성량이 크신 선생님이지만 그날따라 힘주어 말씀하셨다. 어디선가 군대를 가기 싫다는 녀석을 만나서 작정하고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라 나는 당연히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버젓한 명분을 배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지켜야 한다.
대학에 가면 ROTC를 지원해서 해군 장교로 복무하고 싶었지만 우리 학교에는 ROTC가 없었다. 장교의 꿈을 버리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누구나 갈 수 없는 곳! 정말 힘들어서 나를 확인할 수 있는곳 ! UDT, 특전사를 고민하다가 해병대 수색대를 선택했다.
특수한 임무를 하는 곳의 대원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스스로 걸어들어왔고 힘든 훈련을 받았다는 자신감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나 역시 수색교육과 공수교육을 마치고 매일 이어지는 훈련을 소화하며 생기는 자부심을 고스란히 가슴에 채워갔다.
훈련으로 100일 휴가도 미뤄가며 열심히 군 생활을 하고 1년 만에 휴가를 받았다.
나는 수많은 밤을 함께 술로 보낸 오랜 친구를 찾아갔다.
입대 전에도 녀석과 술자리가 시작되면 언제나 해가 뜰 때까지 마셨었다.
어둠이 스멀 스멀 내려앉을 때쯤 신림사거리 4번 출구에서 만났다. 저녁으로 순대 국밥에 반주를 시작했다. 반주로 소주 3병을 비우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러 나갔다. 허름한 주점에 들어가서 삼치구이를 주문하고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건배를 시작했다.
친구는 해병대에 다섯 번이나 떨어져 아직 입대 전이었다. 한 번만 더 지원해보고 안되면 그냥 육군으로 입대할 계획이라며 씁쓸하게 웃으며 홀로 잔을 들었다. 친구로서 안타까웠다.
훈련받은 이야기나 군대 생활을 이야기하며 밤이 깊어지는 만큼 우리도 술독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 중 그날의 사건이 되는 논쟁이 도마위에 오른 것은 서로 얼큰하게 취해 있을 때였다.
어떤 이야기 끝에 친구가 말했다.
< 전쟁 나면 다른 나라 가려고! >
나는 술이 확 깨면서 내 귀를 의심했다. 해병대를 지원하겠다는 놈 입에서 국가를 버리고 혼자 살겠다며 도망을 간다고?
< 너 그럼 해병대는 왜 가려고 했냐? > 내가 쏘아 붙이 듯 물었다.
이미 군에서 많은 훈련을 받고 정신교육으로 무장한 나에게 친구의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멋있잖아! 정복도 멋있고! > 그렇게 말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훈련을 견뎌내고 수색대 휘장과 그린베레를 머리 위에 썼다. 감히 멋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병대의 전우가 되려고 하는 사상이 불순해 보였다.
친구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적어도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싫다는 이유라면 모르겠지만 단지 멋있어서 해병대를 간다니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눈을 흘리며 내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찮은 놈을 쳐다보듯 말했다.
< 너는 해병대 오지 마 새끼야! > 나의 눈 빛이 느껴졌는지 친구는 불쾌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말을 심하게 하긴 했다. 개인적인 가치관이었을 뿐이니 멋있어서 오던 사명을 가지고 오던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군에서 배운 소속감과 정신교육 그리고 고단했던 훈련을 이겨낸 것이 너무 가볍게 치부되는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다.
고교시절 역사 선생님에게 배운 교훈을 침이 튀게 늘어놓으며 우리는 전쟁에 참여해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친구에게 강요하고있었다.
점점 언성이 높아졌고 가만히 있는 대한민국을 가운데 두고 혈기왕성한 두 젊음은 물러서지 않았다.
머릿속에 남은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집에 돌아오는 기억은 택시에 남겨뒀는지 남아 있지 않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빤스 바람으로 내방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속이 쓰리고 눈두덩이가 뻐근해서 거울을 보니 옅은 화장을 한 듯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지워진 기억을 찾으려 한나절이나 애쓰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녀석은 자기 입술이 터져 있다며 어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며 궁금해했다. 운 좋게(?) 비슷한 타이밍에 기억을 잃은 것같았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는 짧은 통화를 끊으며 친구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 복귀하기 전에 연락해! 한 잔 더 해야지! >
< 콜~!! > 내가 대답했다.
국가를 운운하며 거창하게 마시던 술은 사내들의 유치한 주먹다짐으로 끝났다. 기억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우리는 이후로도 쭉 친구로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신다.
어제 마지막 민방위 교육을 인터넷으로 마쳤다. 이제 나의 육체는 국가에서도 별 쓸모가 없는지 집합까지는 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전쟁이 발발해서 상황이 어렵게 되면 전장에 나갈 각오는 되어있다. 헬 조선이라고 해도 국가가 있음에 우리의 삶이 유지된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정치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무능한 남자들로 인해 힘들어야 할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것이고 그곳에 나의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