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죽거든 술독 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
다른 남매들과는 다르게 나는 여동생과 우애가 좋은 편이다.
오빠라고 하기엔 항상 부족한 나에게 동생은 언제나 우호적이었다. 별것도 아닌 나의 개똥철학에 언제나 공감해 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편이 되어주었다.
함께 자취를 하던 시기에는 퇴근 후 자주 술자리를 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나와 앉아서 술 잔을 주고받을 만해서 술친구로도 부족하지 않았다. 같은 배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의 대화는 잘 통했다.
술자리에서 늘 하던 대화 중 하나는 언젠가 둘이서 술집을 차리자는 것이었다.
그럼 매일 술도 마실 수 있고 일하면서도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나 싶었다.
작지만 아지트같은 술집을 차려서 우리가 싫어하는 진상 손님들은 받지 않고 젠틀하고 멋있는 인생관을 같은 사람만 받자고 했다. 그럼 매일 재미있게 술을 마실 수 있고 그들과의 대화는 술과 함께 낭만이 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행복했었다. 뭇사람들이 로또에 당첨이 되면 어떻게 살 것인지 상상하듯 우리는 상상 속에 술집을 차리고 재밌게도 놀았다. 안주는 요리에 관심이 있던 내가 하기로 했고 말발이 뒤지지는 않은 동생이 카운터를 보기로 했다. 술자리에 앉을 때마다 우리의 술집은 허공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지다가 술자리가 끝나면 이내 사라졌다.
살면서 딱 한 번 근무 중 술이 허락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아들이 4살이 되었을 때 삐걱거리던 부부생활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도시생활도 싫었고 그대로 부모님의 업을 이어받아 사과농사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시와 다르게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늘어진 그곳의 시간은 빠르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그것을 여유라 말했다.
더욱 맘에 드는 것은 농사일 중간에 먹는 새참과 막걸리였다. 도시의 자동차들이 깜빡이만 켜도 크락션을 울리듯 그곳에서의 새참은 그렇게 당연했다.
드디어 일을 하면서도 술을 마실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이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마주하는 가식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타인에게 신경 쓰며 예의를 차려야 하고 형식적이라도 갖추어야만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불편함이 없었다.
차려입은 옷은 누추했지만 도시의 옷보다 훨씬 편했고 온전히 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과나무는 나의 행동과 표정에 어떠한 딴지도 걸지 않았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나무를 가꾸는 일은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심심하지 않았다. 밤새 충전해둔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이 나무 저 나무를 몇 번 오르고 나면 새참을 먹었다. 갈증이 목까지 올라왔을 때 마시는 막걸리는 꿀맛이었다.
도시의 삶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지는 삶이었다면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삶은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전제로 꾸려졌었다.
독자를 납득 시키기에는 너무 많은 개인적 사정으로 다시 도시생활을 하고 있지만 농사를 짓던 그 시간이 항상 그립니다. 언젠가 도시생활을 끝내는 날에는 그곳으로 내려가 작은 공방을 만들고 글을 쓰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야 그저 주정뱅이로 보일 것이지만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인 것이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일하고 싶은 작은 소망일 뿐이다.
술 한 잔이면 평소에 내가 느끼던 모든 감각들이 더욱 손을 뻗어서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볼을 스치며 부는 바람도 그냥 불지 않는다. 어떤 이유가 있을 것만 같고 이유가 없더라도 1분 전의 그 바람하고는 전혀 다른 바람임을 느낀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도시의 각박함 속에서도 꽃의 향기를 찾아준다.
음악은 커다란 선물이 된다. 가만히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무수한 감정이 고개를 든다. 작곡자의 감성과 가사를 쓴 작가의 마음도 전해진다. 계절과 장소가 바뀔 때마다 같은 노래라도 전해지는 메시지가 다르다.
이 짧은 인생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느끼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나의 태생이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량의 기운을 잔뜩 받아서 놀고 마시며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는 삶에 목마르다. 동생과 자주 이야기했지만 할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물려주셨다면 나는 아마 한량과 예술가의 중간쯤 되는 삶 속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충분히 남들과 다른 생각으로 살고는 있지만…
어차피 큰돈도 벌지 못하는 거 진작부터 예술 쪽으로 진로를 정할 것을 그랬나 보다.
차라리 창작의 고통으로 몸을 꼬아대는 삶이 내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지금 올라타고 있는 도시의 두꺼운 등껍질에서 내려오면 시골로 갈 것이다.
나의 자유의지를 깔고 앉아서 도시에서 잃었던 나를 찾고 글을 쓰며 살고싶다.
그때쯤이면 누구의 눈치도 없이 한잔하면서 일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