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의리가 필요하다고?

< 나 죽거든 술독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

by nAmsoNg



그녀는 조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지를 자주 입었고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 곳이나 주저 없이 앉았다. 일어나서 엉덩이를 툭툭 털어버리는 행동은 애초부터 숙녀라는 단어를 모르는 듯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동아리에서 만난 1년 선배고 술자리에서 철학 비슷한 논쟁을 주고받는 동지일 뿐이었다. 때때로 우리가 가진 가치관의 퍼즐이 맞지 않으면 바깥으로 나가 서로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나의 고교시절 뒷골목에서 함께 연기를 섞던 여학생들과는 달랐다. 그녀의 담배연기는 무겁고 깊었으며 멀었다.

봄꽃이 아직 고개를 숙이지 않던 봄날이었지만 학생관의 복도는 아직 냉기가 남아있었다. 동아리방으로 향하는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 그녀는 복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올려다보며 동아리방이 잠겨 있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나는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자칫하면 그녀가 내 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낯설면서도 반가운 기운의 입구였다. 전혀 조신하지 않은 그녀의 담배연기와 술자리의 논쟁 속에서 투사처럼 싸우던 그녀의 철학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체육과 신입생의 집합이 이어지던 어느 날 선배들에게 걷지도 못할 만큼 빠따를 맞았다. 그 아프고 서러웠던 날 체육관을 내려오며 나는 당연한 듯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는 살이 터져서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나와 마주했다.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차분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불러낸 미안함이 낯설고 반가운 감정에 확신을 주고 있었다. 그날의 위로속에서 우리는 서로 숨겨두었던 감정을 들켰고 이내 서로의 손을 허락하고 매일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대학 1년 동안 우리가 떨어져 지낸 적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방학 때도 동아리에서 참가가는 여러 봉사활동에 모두 참여하며 매일을 함께했다. 선배들에게 맞은 이후로 체육과 수업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학교에 있었고 그녀는 기숙사에 있었다. 동아리방에 모인 선후배들은 매일 밤 술자리를 핑계 삼아 철학적 논쟁을 이었고 우린 그 안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생각에 반하고 있었다.

땅바닥 아무 곳이나 툭툭 털어내고 앉는 여자지만 생각은 유연하고 신중했다.

담배를 태우는 여자였지만 전혀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보다 멋있게 담배를 태우는 여자를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술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앉아 있는 시간이었다.

일상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튀는 논쟁의 불꽃이 반가웠다. 그것은 다툼이 아니었다. 당연히 모든 생각이 나와 같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철학이 실타래처럼 엉켜 우리의 시간을 행복하게 잡아먹었다. 함께 봤던 영화와 음악, 책 속에서는 끊임 없이 생각들이 쏟아졌고 어서 빨리 술잔을 기울이며 그것들을 주고받고 싶어 했다.

나의 머릿속이 가장 깨어있고 왕성하게 움직이며 항상 발칙한 상상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자주 일탈을 감행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다가도, 날씨가 좋은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뜬금없이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로 떠났고 산을 보고 싶으면 산으로 떠났다.

< 날씨 너무 좋다. 대천이나 가볼까? >

< 가자! >

< 수업은? >

< 대천에서 배우는 게 더 많을 거야! >

영등포역에서 소주와 맥주, 간단한 안주를 사서 기차에 올랐다. 입석이든 좌석이든 상관없지만 주로 입석을 끊었다. 돈이 부족한 나이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하고 낭만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는 열차와 열차 사이의 공간에서 술을 마셔야 했고 그 자리에서 담배도 태워야 했기 때문에 좌석이 필요하지 않았다. (라떼는 그곳에서 흡연이 가능했다.) 때로는 여행길에서 만난 다른 이들과 술잔을 나눌 때도 있었다. 생각도 몸도 자유로웠으니 가둬 둘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 사랑에도 의리가 필요해! > 사실 그녀가 갖은 깊고 유연한 철학적 사고에 비하면 나는 겨우 반이나 따라갈까 싶은 정도였다. 그녀는 나름대로의 명제를 내게 새롭게 제시하며 나의 생각을 두드려주었다.

< 사랑 후 이별에는 다음 사랑까지 기간을 갖는 것?

남녀 간의 사랑 속에는 우정도 포함되므로 의리도 개입될 수 있다는 것?

서로의 아픔을 지켜 주는 것? >

사랑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행동의 결과들을 헤집어 올라가면 그보다 가까운 명제가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사랑은 수많은 명제들이 도착하는 마지막에 큰 팔을 벌려 그들을 안아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 우리 대화에는 언제나 결론이 없었지만 행복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모든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우리 서로가 그것이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술의 나른한 기운을 빌려 수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을 공유했다. 그녀는 나의 愛人이면서 친구이자 선생이었다. 보수적이며 고집스러운 성격의 나를 상냥한 카리스마로 다독이며 성장시켜주던 시간은 중년이된 나의 술잔 앞에 고마운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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