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들과 한 잔 하던 중

< 나 죽거든 술독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

by nAmsoNg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중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부끄러운 나의 과거를 어디까지 벗겨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다. 작가와 독자로 만난 인연도 그러하지만 심심치 않게 내 글과 마주하는 나의 지인들은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응원도 해주겠지만 부끄럽고 창피할 때가 많다.

글을 쓰기로 한순간부터 한치의 거짓이 없는 살아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결심했다. 누구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지 못하니 거짓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윤리적 역량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흠이 글이 되어야 한다면 진실로 적어야 하고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소재의 가방에 담지 않았다. 그렇게 잘 지켜내며 글을 쓰고 있지만 한 번은 나의 글 어딘가에서 고백하고 싶었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운 과거들을 큰 용기를 내어 작품의 어디쯤으로 밀어내고 있음을 말이다.

나의 아픔은 글이 되어 나를 달래주기도 하지만 때론 널리 읽히며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

그것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면 내 글이 어느 누군가에 닿았을 때 충분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결혼생활 4년 끝에 우리 부부는 이혼을 전제로 별거를 시작했다. 아들을 누가 데리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마지막 투쟁이 되었고 나는 치열하게 싸웠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었고 결국 내가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 나는 아들을 데리고 시골에 있는 본가로 들어갔고 아내는 친정인 인천으로 올라갔다.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고 트럭 앞에서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아들이 작은 입으로 말했다.

<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고 싶다! >

참아두었던 눈물이 기어이 터졌다. 엄마에게 인사를 시키고 아들을 서둘러 트럭에 태웠다. 아내의 시야에서 벗어나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왔을 때 차를 세우고 내렸다. 아들이 보이지 않게 트럭 뒤로 갔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그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아들이 아파하는 것이 더 아팠다. 아내를 원망했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게 살았던 내게 그렇게 매몰차게 하지만 않았어도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었다. 쫓아다니며 이혼을 해달라던 아내를 다독인 적도 수두룩했다. 결국 이별의 결정은 내가 했다. 아내가 습관처럼 뱉던 이혼이라는 힘없는 푸념이 내 입 밖으로 나왔을 땐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단호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나의 눈물과 섞이며 볼을 타고 흘렀다. 빗방울이 나의 어깨를 때릴 때마다 어깨가 더욱 들썩였다.


본가에서의 생활은 많이 불편했다. 시골집의 별채에서 따로 지내고 있었지만 언제나 부모님께 죄송했다. 부부의 잘못은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있다지만 그래도 내 가정 하나 건사하지 못한 남자로서의 죄책감 때문에 언제나 무력해 있었다. 엄마의 부재로 홀로 잠들어 있는 아들을 내려다보면 가슴이 찢어졌다. 하지만 아들 옆에 엄마를 두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그 숨 막히는 동거에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가지 어린 아들을 봐서라도 참았던 모든 노력은 결국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기애를 지키면서 아들에게서 엄마를 밀어낸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아들에게 우리 부부는 죄인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아내는 안동으로 내려와서 아들을 보고 올라갔다. 손자의 외출을 준비하는 할머니는 제일 깨끗한 옷을 골랐다. 그리고 도시생활을 하던 맵시를 살려 적절한 컬러를 조합해서 위아래로 옷을 입혀 주셨다. 나의 옷도 챙겨 주셨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나는 며늘아이에게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싫으셨던 것 같다.

< 너 없이도 내 아들과 너의 아들은 잘 살고 있다! >라며 옷을 고르는 듯하셨다.

안동에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낸 아들은 엄마와 헤어질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도 아내도 눈물을 감추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차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서 아들은 언제나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고 나는 심란하게 입술을 깨물며 차를 몰았다. 그렇게 몇 달째 안동을 오고 갔다. 아들은 점차 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적응해 나가는 것마저 가슴이 아팠다.


안동을 다녀오는 횟수가 늘어나며 나도 아들도 조금은 무던해졌다고 느끼던 날이었다.

차에서 잠이 들었던 아들을 깨워 샤워를 하고 별채에 작은 술상을 차렸다. 4살짜리 아들의 음료수를 준비하고 나는 만두를 데워서 쟁반 위에 올렸다. 소주를 따르고 아들의 음료수 잔과 건배를 했다. 뾰족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안동을 다녀오던 초반의 감정보다는 차분했고 단지 평소처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방바닥에 내려놓은 쟁반을 사이에 두고 아들과 나는 두어 번의 건배를 이었다.

테이블 위나 상위에 차려 놓고 먹었다면 나았을까? 궁상맞게 앉아서 술을 기울이는 모습을 별채를 지나던 아버지에게 딱 걸렸다. 잘못한 것이 아니라 걸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후의 상황이 걸렸다는 표현이 맞도록 흘러갔다. 아버지는 안동에서 아내를 만나고 돌아온 내가 착잡한 마음에 술을 마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셨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상한 속을 위로하려 마시던 술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호통을 치셨다.

< 술 마시려면 엄마한테 안주해달라고 해! 숨어서 마시지 말고! >

나만큼 아버지도 속이 많이 상하셨던 것 같다. 별거 중인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며느리를 만나고 왔다. 내 아들의 아픔에 내가 아프듯 아버지는 내가 받았을 아픔을 뚫어 보시고 속이 상하셨겠다 싶었다.

< 따라와! > 하시며 본채로 앞장서셨다. 적어도 방바닥에 내가 차린 궁상맞은 술상보다는 그럴듯한 술상을 준비해 주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엄마는 애써 태연한 척 술상을 차려주셨다. 아들과 단둘이 마시려던 오붓한 술자리는 아들을 아픔을 위로해 주고 싶은 무뚝뚝한 아버지의 개입으로 끝나버렸다. 엄마가 차린 술상 앞에 아버지와 엄마와 나의 4살 아들이 둘러앉아 평소처럼 덤덤하게 잔을 기울였다. 최대한 멀쩡한 척을 해야 했고 부모님도 나를 위로하려 하시지 않았다. 불필요한 위로가 더욱 가슴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할머니가 깎아준 사과를 입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나의 결정은 이제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결정은 여러 사람을 고달프게 했다.

그런 위험한 칼자루를 들고 사는 것이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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