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죽거든 술독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
여러 사람들을 만나 술자리를 갖다보면 그만큼의 추억들이 생긴다.
꽁꽁 잡아 두었던 비밀을 술의 나른함을 빌어 고백을 하기도 하고 살짝 흐트러진 서로의 약점은 관계를 더욱 부드럽게 해준다. 술자리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시간만큼은 진실된 표현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꼭 취하지 않더라도 술이 있는 분위기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금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어서 소통의 장소로 이용하기 아주 적절하다.
하지만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음주의 끝맺음에서 고개를 드는 술 주정이다. 조금 점잖은 표현을 쓴다면 <주사>가 되겠다.
술자리에만 앉으면 갈때까지 가던 어린시절엔 정말 수 많은 주정 들을 보고 뒷처리를 했다. 살짝 꼬부러진 발음으로 반드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는 고집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옆테이블과 싸움이 붙던가 화장실도 가기전에 먹은 것을 확인하는 주정은 함께 있는 사람을 곤욕스럽게 한다.
보통의 사람들보다 술이 조금 세다는 이유로 나는 많은 실수들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고 정리해야 했다. 어쩔 때는 그들을 버리고 가야 할 정도로 취하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첫째 유형, 입이 거칠어지고 싸움을 벌이는 사람!
두 번 다시는 함께 술을 먹고 싶지 않은 유형이다.
누구나 가슴에 묻어둔 상처가 있고 억울함이 있다. 술의 힘을 빌려 그 감정을 위로하던 더 이상 생각나지 않게 침대에 쓰러져 잠을 청하는 것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음주 후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이 꼭 있다. 거친 말투로 슬슬 발동이 걸리고 욕을 하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는 상태로 변한다. 그런 사람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나가서 오지 않아 찾으러 가면 꼭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환장하는 것은 집에 보내려 해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술집이든 거리든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비틀거린다. 말리려고 양쪽 팔을 잡은 사람은 죄 없이 끌려다니며 처음 본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한다. 민망하다.
보통은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이나 왕년에 좀 놀아봤다는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제는 나이가 조금 들었는지 술 마시는 분위기를 보면 앞으로 일이 짐작이 된다. 조짐이 보이는 순간 없던 핑계를 만들어서 아끼는 사람을 데리고 자리를 피한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니…
두 번째 유형, 취하면 항상 우는 사람!
슬픔이 많은 사람이다. 나도 측은해질 때가 있지만 상습적이라면 그 또한 함께 있던 사람이 곤란해진다. 싸움을 거는 사람과는 절대 다시 술을 마시지 않지만 취해서 우는 사람과는 술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 가능한 울기 직전에 술자리를 끝낼 계획으로 마시지만 항상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취해서 우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옆에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도 한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그렇다면 처세는 달라진다. 술자리의 한쪽 구석에 슬쩍 밀어 넣고 실컷 울게 둔다. 종종 눈물을 닦을 휴지만 건네주고 나머지 멤버들은 하던 대로 술을 마신다. 주정이긴 하지만 그가 가진 슬픔이 측은해서 봐주는 편이다.
술이 정말 많이 취한 어느 날이라면 나도 종종 수돗물을 틀어두던가 차 안에 음악을 틀어두고 홀로 울 때가 있다. 술이 건드린 아픔은 눈물이 되어 내 몸에서 실컷 빠져나온다. 그렇게 눈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가 되자 나는 취해서 우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 아픔을 안아주진 못하더라도 울게 놔두는 정도의 배려는 하려 한다.
세 번째 유형, 말없이 집에 가는 사람!
이런 유형은 함께 있는 이에게 당장 피해는 주지 않지만 다음날 연락이 될 때까지 불안하게 한다. 화장실을 간 줄만 알고 대수롭게 여기던 빈자리는 끝끝내 채워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 주기를 싫어하고 소심하며 귀소본능이 뛰어난 사람일 때가 많다.
스스로 취했다고 생각하면 실수할 것이 두려워 신데렐라처럼 황급히 집으로 향한다. 이것도 한두 번이고 주사를 아는 친한 친구가 옆에 있다면 그나마 컨트롤하기 쉬운 유형이다. 1:1로 딱 붙어서 친구가 움직일 때마다 동행을 하고 귀가 의사를 밝힐 때 바로 택시를 태워주면 상황이 종료된다.
네 번째 유형, 모텔이 시급한 애정행각!
이런 남녀가 같은 테이블에 있다면 떨어트려놓으면 그만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옆 테이블에 달랑 남녀가 둘만 있다면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한 번은 우리 팀이 앉은 자리 옆 테이블에 남녀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테이블은 술집의 한 가운데 있었다. 커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테이블에 받친 팔꿈치를 자주 떨어뜨려서 시선이 가던 커플이었다. 둘이 번갈아가며 수저를 떨어뜨리고 턱을 괴고 있던 팔꿈치를 떨어트리며 우스운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지했고 충분히 취해서 늘어진 눈꺼풀 속엔 빨간 하트 모양이 그윽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잠시 방심한 사이 일이 벌어졌다. 옆 테이블의 여자는 어느새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고 둘은 서로를 더듬으며 고귀하지 않은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그 커플은 의자에 떨어지기까지 했다. 우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릴 수도 없었다. 말리면 안 될 것 처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았다. 의자에 떨어졌던 커플은 벌떡 일어나서 다시 사랑을 나눴고 곧 부족함을 느꼈는지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타인에게는 결코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니지만 그들이 그렇게 사랑한다면 말릴 수는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 외 유형들!
지금까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유형이었지만 종종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술만 취하면 뛰기 시작하는 체육과 여자 후배는 달리기가 너무 빨라서 어지간한 남자도 잡기 어려워 했다.
샌님 같은 누군가는 술만 마시면 화류계의 야릇한 조명 아래서 한 잔을 더 마셔야 한다며 한 달치 월급을 모두 날리는 것도 보았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선배는 모두와 헤어진 뒤 다음날 집 앞의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잠이 깼다. 워커는 전화박스 앞에 잘 정돈되어 있었고 모자는 수화기에 걸려 있었으며 군복은 전화번호 책이 있던 자리에 각이 잡힌 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또 어떤 선배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잔뜩 술을 마시고 잘 곳이 없어서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차에서 잠이 들었다. 여름이라 남자들은 자면서 빤스만 남기고 모두 벗어젖혔고 다음날 뜨거운 열기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어보니 재래시장 한복판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인파 속에 주차된 티코 안에는 빤스만 입은 사내 세넷 이서 흉물스럽게 섞여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술이 참 어려운 것임은 틀림이 없다.
술에 장사가 없듯 컨디션에 따라 믿었던 주량도 배신을 할 때가 있고 스스로의 몸가짐은 물론 옆 사람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마셔야 한다. 또한 취기에 섞는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니 홀로 마시더라도 술은 <예>를 다해서 마주하는 것이 몸에 배어야 할 것이다.
PS : 먹은 것을 확인하는 지저분한 이야기는 차마 적지 못했다.
아마도 모두들 경험들은 있었을테니 상상에 맡기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