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병 재테크를 아시나요?

"진로에서 나 한테 상 줘야 하는 거 아니야?"

by nAmsoNg


아버지는 반주를 즐겨 하셨다.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는 항상 소주를 드셨고, 엄마는 항상 반 병만 드시라고 말씀하면서도 저녁 메뉴가 마침 소주와 어울릴 때는 아버지를 위해 소주를 냉동실에 넣어 두셨다. 사랑에는 약간의 모순이 존재한다.

쌀 포대 같은 자루에 병이 꽉 차면 집 앞의 가게에 공병을 팔러 갔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내 몫이 되었다. 엄마나 여동생이 들기엔 힘에 부칠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때 소주 병이 20~30원 정도였고 맥주는 항상 소주 병보다 10원 비쌌다. 아버지는 주로 소주를 드셨기 때문에 소주병 무더기 속에 맥주병은 간간이 끼어 있었다. 종종 오시는 손님들이 비운 맥주병이다.

지금 기억으로 마대자루 한 자루를 모두 팔고 나면 2000원 가까이가 되었다. 나는 엄마의 명을 받아 에이스 과자나 빠다코코넛, 그리고 봉지 포장이 된 과자 한두 개와 바꿨다. 비디오를 보면서 먹을 간식으로는 충분한 양이었다. 이틀 동안 먹을 때도 있었다.

소주 병이 30원이라고 가정하면 아버지는 66병의 소주를 드신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2달 주기로 반복되었던 일이었으므로 아버지는 2달간 매일 1병의 소주를 드신 셈이다.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빈병을 팔아 과자로 바꿔 먹었다는 소식을 전하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진로에서 나한테 상 줘야 하는 거 아니야? "


세월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빈병의 몸값은 의심스러울 만큼 오르지 않았다. 마치 나의 월급 같았다.

결혼 후 이사를 자주 다니기도 했고 30원짜리 공병을 팔러 가기도 귀찮아 분리수거로 공병을 처리했었다.

그러던 중 공병 값이 100원으로 올랐다. 이미 난 아버지가 되었고 우리 아버지처럼 매일 소주 1병을 반주로 해치우는 습관이 이어진 지 몇 년째였다. 공병 값이 100원으로 오르면서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빈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100원이면 분리수거함에 넣긴 아까운 금액이었다.

안 그래도 좁은 현관은 소주 병으로 비좁아졌고 박스 위로 빈병이 넘쳐흐를 것 같았다. 애주가지만 비어진 소주 병이 현관 앞에 수북이 쌓여있는 것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쉬는 날 귀찮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공병을 팔기로 했다. 라면박스 두 박스에 꽉 차고도 넘쳐서 열댓 병은 봉지에 따로 담아서 트렁크에 잘 실었다. 5살 아들놈을 옆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다가 귀찮아져서 눈에 보이는 슈퍼에 들어가 물어보기로 하고 한가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첫 가게에 들렀을 때는 공병 받는 날이 아니라며 툇짜를 맞았다. 다시 차를 움직였다.

공병을 받을 것만 같은 슈퍼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가게로 들어갔다.

계산대의 사장님은 먼저 온 아주머니의 물건에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 사장님 공병 받아요? >

< 얼마나 돼요? > 계산대의 여사장님이 손님의 바코드를 찍으며 업무적인 멘트로 물어보셨다.

< 두 박스 조금 더 되는데요! >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계산대 옆에서 물건값을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 앗따! 많이도 자셨네~ > 덩달아 나도 놀라서 물었다.

< 많은 건가요? >

< 많지요! > 아주머니가 계산대의 물건을 기다리며 대답하셨다.

아주머니의 물건은 연신 바코에 찍혀 "삑삑" 소리를 냈고 한 공간에 있던 세 사람의 어색한 웃음이 잠시 시간을 메우고 있었다.

소주 병을 이렇게 많이 갖고 있는 일이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새삼 깨달았다. 평범하지는 않더라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슈퍼에서 마주친 아주머니의 소스라치는 반응에 나도 놀랐다.

사장님은 병을 받을 수는 있는데 하루에 30병 밖에 안 된다고 하셨다. 하는 수없이 차에서 30병만 내렸다. 아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와 바꾸고 다음 슈퍼를 물색하러 시동을 걸었다.

보조석에 앉은 아들은 < 킨더 조이 > 에서 나온 장난감에 황홀해하고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간 곳에 있던 슈퍼에서도 30병만 받아야 하지만 오늘만 더 받아준다며 남은 공병을 모두 처리해 주셨다. 아들의 군것질거리와 그날 마실 소주 2병과 바꾸어 집으로 귀가했다.


운전을 하는 내내 가게에서 아주머니와 나눈 짧은 대화가 계속 빙빙 돌았다.

< 많나요? >

< 많지요! >

공병을 처음으로 100원씩 받고 팔았던 그날은 하루 종일 음주습관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인가! 아닌가? 나의 라이프스타일이니 신경 쓰지 말까? 건강 생각해서 좀 줄일까? >

결론을 내렸다기보다는 그냥 술을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장바구니 구루마에 공병이 넘칠 때쯤이면 아들의 음료수와 그날 마실 소주 한 병과 바꾸는 재미가 쏠쏠했다.

진작부터 공병 값이 올랐어야 했다.


요즘은 건강상 운동을 시작했고 매일 소주를 마시는 습관을 바꿔보려 자제하고 있다. 현관 앞에 순식간에 쌓이며 엉켜있던 소주 병이 요즘엔 정갈하게 서있어도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모님과 술 게임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