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대학 가서 이렇게 재밌게 놀았니?
부모님은 20살의 어린 나이에 나를 낳으셨다. 2년 후에는 동생도 태어났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야 부모님이 일찍 가정을 꾸리셨던 것을 알았고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내가 보고 자란 것보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은 양가 집안의 어떤 도움도 없이 사랑으로만 우리 가정을 지키셨다.
부모님은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성향이었다. 그런 부모님과 여행을 동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학생이 지나면 다들 부모님과 멀어진다던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하지도 않으셨고 당구장과 오락실을 가도 상관하지 않으셨다. 이성 교제도 허락하셔서 여자친구가 집에 와서 밥을 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가장 놀라며 부러워하는 것이 있었다.
가족여행이 재미있어지면 두 분의 허락하에 학교를 빼먹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계획 없이 생기는 재미와 낭만이 여행의 묘미다. 부모님은 그런 부분을 학교 공부보다 중요시 생각하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함께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하는 부분을 미안해하신 것 같기도 하다. 일요일 밤까지 실컷 놀고 엄마는 월요일 아침에 나와 내 동생의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 아이가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숴야 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 그리고 우리 가족은 다음날 새벽까지 알뜰하게 놀고 아침에 귀가해서 두 분은 회사로 우리는 학교로 출발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도 초등학교 때가 아니라 학업을 가장 중요시할 중,고등학교 때였다. 노는 거만큼은 열정적이었다. 나와 내 동생은 그런 부분을 아주 쏙~ 배워서 둘이 만나서 놀면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긴다.
나는 대학 1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왔다. 내가 전역을 했을 때 동생은 전문대를 마치고 작은 디자인 회사를 아등바등 다니고 있었다.
식사 중 각자 휴무 이야기가 나오다가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동해의 어느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고 회를 먹으며 성인이 됐으니 부모님과 함께 술을 한잔하는 것이었다. 우리 4식구는 쉬는 날을 조정하고 회비를 걷어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평소의 여행도 즐거웠지만 나는 동생에게 제안을 했다.
< 우리 대학에서 술 마시고 놀았던 것처럼 놀아볼래? >
< 엄마 아빠랑?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동생은 신나는 일이 생겼다는 듯 작은 눈을 더 괴슴츠레 뜨면서 동의의 시그널을 보냈다.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부모님께 거부감이 생기면 안 되니 간단한 레크레이션 벌칙 도구를 챙겨서 여행지로 떠났다.
아버지와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고 근처 횟집에서 술을 한잔하며 식사를 마쳤다.
점점 준비된 시간이 오고 있었다.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숙소로 갔다.
부모님께는 여행지로 오는 차 안에서 미리 예고를 해놓았다. 평소처럼 저녁에 술 한잔 먹고 숙소에서 TV 보다가 자는 건 식상하니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며 빠져나갈 수 없도록 단단히 못 박아 뒀다.
술자리를 만들고 우리는 간단한 술 게임을 시작했다. 술 게임의 묘미는 벌주에 걸렸을 때 재촉하는 추임새와 노래, 함께 있는 사람들의 흥이 필요하지만 부모님과 함께하는 자리니 부담스럽게 시끄러운 것은 생략했다.
초반의 벌주는 부담이 없으니 모두들 무리 없이 마셨다. 밋밋했지만 초반에 감내해야 하는 시간임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점차 옵션을 넣어 게임에 긴장감을 더했다. 영어를 쓰면 벌주를 받고 못 마시면 흑기사 대신 고무줄로 머리 묶어주기부터 시작했다. 게임 중 어떻게든 영어를 끌어내려 대화를 이어갔다.
< 엄마! 저거 소리 좀 줄여줘 봐! 시끄럽네~ >
< 뭐? TV? > (영어를 쓰심)
<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랴! 야 이~~ 시원한 바람~ > (어른들과 함께할 땐 이렇게 바꿔서 했다.) 동생과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추임새를 넣고 벌주를 강요했다. 술이 약한 엄마는 벌주 대신 고무줄로 머리 묶기를 선택했다. 분위기가 익어갈 즘 옵션을 추가했다. 이제 웃으며 이빨을 보여도 벌주를 마셔야 하고 벌주가 힘들면 얼굴에 낙서를 당해야 했다.
함께 술을 마시며 게임을 하는 동안 웃음바다가 되었다. 게임을 안 해본 두 분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우리의 계략에 걸려서 술을 마시고 노랑 고무줄에 머리카락이 묶였다. 눈에는 안경이 그려져 있고 엄마의 코밑에는 콧수염이 시커멓게 그려졌다. 서로 바라보니 웃음이 나오고, 웃어서 이빨이 보이니 또 낙서가 생겼다.
무아지경이었다. 처음 이런 게임을 하면서 술잔을 들었던 두 분은 게임에 심취해 있었다.
배꼽은 이미 빠져서 돌아다니고 이빨이 보이지 않게 웃느라 얼굴 근육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도저히 서로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항상 묵묵하고 근엄하던 아버지는 머리카락이 노랑 고무줄에 여기저기 묶여 있었고 얼굴에 생긴 우스꽝스러운 낙서로 무게를 잃었다. 커트머리였던 엄마의 머리도 남아나지 않았다. 고무줄에 묵인 머리카락은 중구난방으로 뻗혀있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동생은 부모님의 얼굴에 작정하고 그림을 그렸다.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할 때쯤 두 분은 이제 그만하자며 게임을 마무리했다.
술상을 정리하던 중 엄마는 우리에게 심오하게 물었다.
< 너네! 대학 가서 이렇게 재밌게 놀았니? >
< 이건 아무것도 아냐~ >
< 나도 대학 갈걸 그랬다. >
게임으로 우스꽝스럽게 변한 엄마는 대학에 가지 못한 설움을 애교 있게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