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훈육 하다가 숨고 싶었던 날
<정리 정돈>
깔끔함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한 어머니에게 배운 습관이다. 결벽증이 있을 만큼 깔끔한 건 아니지만 주변 정리가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마음에 안정이 자리잡지 못한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우리집에선 내가 제일 깔끔한 것 같긴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도 정리 정돈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되도록 스스로 정리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나를 닮아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주말이면 내 옆에서 함께 여러 작업들을 한다.
3D 펜으로 마스크 걸이를 만든다던가 핸드폰 거치대를 만들기도 하고 여러 액체를 섞어서 슬라임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만들기라는 취미는 주변을 어지를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나름의 창작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도 항상 작업이 끝나면 깨끗이 정리하도록 한다.
나엮시 가죽공예를 하고 나면 항상 책상 위를 말끔하게 치우고 잠시 작업을 멈춰야 할 때도 다음 작업이 가능할 정도라도 정리해두곤 한다.
정리 정돈은 청결을 넘어 내 인생의 계획과 방향, 그리고 물건 관리, 효율적인 이동 동선을 관리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긴 여행을 준비하며 큰 배낭에 짐을 넣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쉽게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배낭을 꾸릴 때 좌측은 코펠, 우측은 버너, 가운데는 여벌의 옷, 등 쪽으로는 텐트. 가장 위에는 침낭. 작은 가방엔 지갑이나 후레쉬, 지도 등을 정리해서 챙긴다. 이것은 어두운 밤에 쉽게 물건을 찾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
책상 위도 마찬가지이다. 서류라면 자주 꺼내는 것과 자주 꺼낼 일 없이 보관해야 하는 서류의 위치가 다르고 책도 자주 꺼내보는 책과 아닌 책이 다르다. 하물며 나는 고교시절 도서부 출신답게 되도록 책의 장르대로 정리하기도 한다.
정리 정돈은 삶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도 오래된 물건은 어디다 뒀는지 모를 때도 생기니 애초부터 정리를 하지 않는다면 있는 물건을 또 구매하기도 하는 우매한 짓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들도 자주 본인이 갖고 있는 것을 찾지 못하고 새로 사는 경우가 있었는데 경험상 몇 번은 모르는 척 넘어갔지만 이제는 정리를 못해서 찾지 못하는 물건을 새로 사주는 일이 없다.
아들이 슬라임을 만들었던 자리가 깔끔하게 치워지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여러 날 정리하라는 말만 하고 딱히 확인을 하거나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몰아세우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 치웠냐는 질문에 아들은 항상 얼버무렸고 참고 있던 나도 그냥 둘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보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필요 없이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나는 엄연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닌 훈육을 하는 것이니 어른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들~ 아까 이야기 한건 다 치웠니? "
"아니 좀 있다가 치울라고~"
아들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나는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김○○! 위치로!"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직감한 아들은 쏜살같이 내 앞으로 왔다.
"지금 정리된 게 하나도 없는데?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지른 건 치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도 못하면서 커서 무슨 꿈을 이루고 성공하고 돈을 벌 수 있겠니~ ? "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치우며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옳은 훈육을 했고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아들이 들어서 상처가 될만한 발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후에 아무 말을 하지 못한 것은 내가 한 말을 내 스스로가 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도 못하면서 커서 무슨 꿈을 이루고 성공을 하고 돈을 벌 수 있겠니? >
이 말에 나는 내 스스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아들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그럼 아빠는 정리 정돈 잘 하니깐 돈도 많이 벌겠네?"라는 질문이라도 한다면?
꾀 많은 순간 세 치 혀로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와이프가
"당신이 그런 말 할 상황은 아니지 않아?"라고 말해버리면 땅에 떨어진 가장의 위신은 어떻게 할지 아찔 했다. 다행히 와이프는 아무 말도 없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등에 땀이 흘렀다.
마저 정리하라는 말을 얼버무리고 나는 이내 자리를 피했다.
묘한 감정이 교차됐다. 가르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의 치부가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나 싶었다. 한해 한해 나아지고 있지만 어디 가서 돈을 잘 번다고 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 부끄러웠다.
돈도 많이 못 버는 아빠가 괜스레 훈육을 하면서 성공이니 돈이니 하는 이야기를 해버렸나 보다.
주관적인 나의 관점에서 성공했다고 판단되거나 돈을 좀 번다는 사람들은 모두 책상 위가 깔끔했다.
정리 정돈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 습관들이 모여 하나의 긍정적인 결과를 이루고 그 결과들이 쌓여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내 삶이 움직인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지나간 해프닝이었지만 아들 앞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