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방의 연속에도 글쓰기를 포기 못 하는 이유는

기지개 펴는 시간

by nAmsoNg


중학교 시절 질풍노도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시>였다.

사촌누나의 책장에 꽂혀있던 얇고 빨간 시집의 모서리를 검지로 끌어당겼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시인의 시집이었다. 그날 처음 마주한 시집을 침대에 걸터앉아 시간이 멈춘 듯 모두 읽어버렸다. 짧은 글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녹아 있었는지 추스를 수 없는 감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작은 울림도 가슴에선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시기였으니 한 문장 한 문장이 나의 가슴에 꽂혀서 황홀하게 흩어졌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다행히 나의 바람은 문학으로 조금 더 많이 부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시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고교 진학 후에는 도서부 동아리에 입회했다. 3년 동안 서고를 내 집 드나들듯 들어갈 수 있으니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서고에 있는 시집은 모두 읽고 졸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율학습시간에는 틈틈이 연애편지를 쓰기도 했고, 지는 노을이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껴지는 것들을 종이 위에 남겼다. 시나 에세이로 글을 완성 시킨 적은 없었다. 단지 메모에 불과한 생각들을 두서 없이 적는 것으로도 만족했다. 시를 좋아했고 친구들은 나의 글솜씨를 높이 평가해 줬지만 앞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던 학창 시절이었다.


20대에도 틈틈이 메모를 하는 정도로 나의 감정과 심정을 적기는 했지만 모아 두지는 않았다. 홀로 앉아서 술을 마실 때면 언제나 사장님께 메모지와 펜을 빌려서 생각나는 것들을 줄기차게 적었고 다음날 영수증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내가 작가가 돼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이를 낳은 30살 즈음이었다.

문득 내가 메모해두고 버린 글만 모아도 책 한 권 정도는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더라도 책 한 권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요망한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책을 쓴다고? >

웃음이 났지만 쓰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 안 될 것도 없지? >

당장은 아니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간 될 거라 생각했고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간부터는 인생에서 배운 경험들이 나의 글을 더욱 묵직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 조급하지 않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결심을 갖고 바로 글을 쓴 건 아니었다. 역시 나는 포부만 번지르하고 작심삼일을 밥 먹듯이 하는 의지박약자였다. 사업이 망하고 이혼의 위기를 넘기며 재기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피폐해진 자아와 가정을 지키느라 나는 몹시도 지쳐있었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쓰며 위로하긴 했지만 한곳에 모아 두지는 않았다.

그렇게 7~8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살았다기보다는 버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어느덧 마흔을 준비하는 시간 앞에 서 있었고 되든 안되는 방향은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종이를 펼치고 40대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몇 가지 적기 시작했다.

그중 리스트에 다시 적힌 것이 책을 쓰는 것이었다. 10년이 다되는 시간 동안 아직도 놓지 못하는 꿈이라면 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 작가가 되자! 이제는 지난 시간처럼 아무런 노력 없는 시간을 보내지 말자! >

블로그에 글을 쓰고 브런치에도 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에 투고도 하고 문예지에도 투고했다. 년 도별 응모 기간을 달력에 적어두고 투고하기도 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을 하고부터는 브런치 응모전에도 항상 도전했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도 응모전이 있으면 부랴부랴 글을 써서 투고하고 있다. 역시 연락은 없다. 하하

<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라는 생각은 들지만 나만이 아는 사실이 있다.

< 나는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포기할 수 없다! > 말 그대로 나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피를 토하며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을 해보지 않았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고 생각했다. 아직 공부할 시간도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을 쓰는 시간이라도 마침표를 찍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당선작이 없었으므로 대단하지 않은 글을 쓰고도 나는 그렇게나 행복한 것이다.

또한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내 모습이 서재에 앉아 펜을 들고 있는 것이다. 흰머리가 늘어가는 중년의 모습으로 가디건을 깔끔하게 걸치고 서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싶다.

포기할 이유가 없다. 조급하지도 않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내가 계획하고 이루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이루면서 살아왔으니 언젠가는 이룰 것이라고 믿는다.

......

솔직히 기운 빠질 때도 많다. 출간 작가를 보면 부럽기도 하다. 아직 나는 여러모로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냉철히 받아들이고 꾸준히 글을 쓰는 자세부터 가져야 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조급해지지는 않는다.


행복.

그것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다듬어가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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