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숨겨둔 신용카드로 내가 사려고 했던 것은
학창 시절에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두 분은 하루 종일 일하셨다.
아버지는 항상 말끔한 정장을 입고 출근하셨다. 의류 유통업을 하는 중소기업에서 빠르게 승진하셨고 사장 다음의 위치에서 근무하셨다. 항상 일찍 나가시고 새벽에 들어오셨다. 다행히 우리들의 나이를 잊는 일은 없으셨다.
엄마는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직원들을 데리고 근무하셨다. 사장까지는 아니지만 매장 하나 정도 맡아서 관리하는 일을 하셨다.
그 시절 나는 우리 집이 중산층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중산층의 기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다 키운 자식들에게 꺼내는 엄마의 작은 넋두리로 알게 되었다.
사실은 그 시절 항상 대출금에 쫓기며 살았고 카드대금을 막느라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셨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버티던 살림은 내가 군에 있는 동안 아버지의 사업으로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작은 집으로, 그다음 휴가 땐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군 제대 후 자취를 하던 나는 어느 날 엄마와의 통화 중에 다소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었다.
크면서 부모님께 대든다거나 예의 없이 말대답을 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제 나도 어른이니 하고 싶은 말은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많이는 못 벌었어도 아껴가면서 너희들 키웠다. "
"..."
"한 번은 휴가비가 없길래 모아둔 적금을 깨서 간 적도 있었어"
나는 엄마의 말에 반박했다.
"돈이 없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꼴에 부모님의 경계 관념에 대해 비판하고 있던 참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만큼 집안이 무너져 내린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얼마 전 나는 휴가를 가기 위해 깊숙하게 넣어둔 신용카드를 꺼내며 엄마를 떠올렸다.
' 아! 이런 거였구나! '
나는 나의 휴가가 중요했다기보다는 열 살인 우리 아들과 보낼 수 있는 다시 오지 못할 21년 여름이 중요했다. 꽁꽁 숨겨둔 카드로 내가 사려던 것은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내가 어릴 때 빠듯한 상황에서도 가족 모두가 휴가를 떠나야 했던 우리 부모님의 마음도 이러했거니 생각하니 코가 찡해졌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잠시 눈물을 훔치며 뚜꺼운 티슈로 코를 풀었다. )
그리고 나는 왜 엄마에게 그런 아픈 말을 했을까?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 텐데...
기다렸다는 듯 던져버린 나의 말에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자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을 정도로 가정경제를 지키지 못해서 엄마가 미안해!
하지만 엄마 아빠도 열심히 살았어. "
엄마는 예의 없는 나의 말에 화를 내기보다는 미안하다고 하셨고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셨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그 입장이 되어 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느 날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을 지켜보기라도 하려는 듯 세상은 그런 것들을 순순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올여름 나로부터 꽁꽁 감춰놓은 카드로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30여 년 전 우리 부모님이 지키고자 했던 것과 같았음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이고 그 속에서 싹트는 추억이었다.
지난날 엄마를 향해 던졌던 비수 같은 말을 반성하고, 시간이 흘러 혹여나 아들이 나의 잘못을 지적한다면
무덤덤하게 받아줘야 할 것 같다. 녀석도 아들이 생기면 나를 쏘아붙인 기억으로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다가오는 시대가 제아무리 스마트해진다 해도 철이 든다는 것은 결코 시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엄마~ 늦었지만 그땐 죄송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