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나는 네가 B형이라 좋다. ㅠㅠ
혈액형에 따른 대표적인 성향이 때로는 한 사람을 판단하는 아주 빠른 잣대가 되기도 한다.
소심한 A형인 아빠는 쏘 쿨한 B형 아들을 키우며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지난 일요일이었다.
하루 종일 쉬어야 할 공간인데 너무 산만한 것 같아서 아들에게 정리를 시켰다.
"거실에 네 물건 좀 정리해라"
아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들아! 네가 어지른 바닥은 네가 닦아라"
"식탁의 네 책은 네 방에 정리해라"
1시간에 걸쳐 이야기한 것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체 아침식사를 했다.
나는 슬슬 열이 올라왔지만 <욱>하고 혼내고 싶지는 않아서 다시 이야기했다.
"밥 다 먹으면 모두 정리 하는거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아들을 지켜봤지만 이건 뭐 똥개가 짖어도 돌아보겠구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들아!"
나긋한 목소리로 불렀다. 분위기 파악이 되지 않은 아들은 거실을 휘젓고 뛰면서 나를 돌아봤다.
"거기 쇼파 앞에 엎드려라!"
아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한 번도 그런 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아들은 배를 깔고 엎드려서 천진하게 팝잇을 누르고 있었다.
"아니. 엉덩이는 들어야 해"
나는 조용하고 친절하게 <엎드려뻗쳐>자세를 알려주었다.
자세가 완성된 아들은 아직까지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한 손으로 팝입을 눌렀다.
"아들! 멈추지 말고 팝잇을 계속 눌러야 해! 알았지?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멈추면 안 된다"
나는 조용히 지시했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팝잇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옆에 앉아서 가죽공예를 하던 내가 말했다.
"아들! 팝잇소리가 안 나네. 네가 하고 싶었던 거쟎아. 계속하세요~"
조금씩 호흡이 거칠어지던 아들은 이제서야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천진한 모습이 사라지고
몸을 배배 꼬면서 사지를 거실 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나는 추가로 이야기했다.
"다리는 모으세요! 팝잇도 계속하고!"
시계를 보니 20여 분이 지나고 있었다.
아들은 끙끙거리며 점점 자세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심리적인 압박이 필요했다.
"아니야 아직 멀었어~ 아빠는 한번 시작하면 쓰러질 때까지 하는 사람이야~ 알지? 아직 40분 남았어. 다리 모으세요!"
아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확실히 느껴질 때쯤 이제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어른이 이야기를 하면 일단은 들어야 한다. 궁금하다면 행동한 다음 이유를 물어보는 게 순서다.>
<엄마 아빠는 너의 요구를 잘 듣고 해주려고 노력하는데 네가 엄마 아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정리 정돈이 돼야 네가 필요할 때 네 물건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이다.>
중요하다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알았니?"라고 묻자
아들은 "못 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호흡을 깊게 내쉬고 이해하려 했다. 처음 엎드려뻗쳐서 이야기를 들으니 힘든 상황이라 들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 자세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데 네가 처음이니깐 봐줄게. 일어나서 들어"
아들을 일으켜 세워서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훈육에는 인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설명이 끝나고 물었다.
"억울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니?"
"없어!"
혼나는 중에도 반말이라니... 이걸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 네가 아빠한테 반말로 대답할 분위기는 아니잖아. 그렇지? 이럴 땐 존댓말을 하는 거야! 알겠지요?"
"네"
"자! 그럼 하던 거마저 해. 엎드려!"
나는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스트레스를 줘야 할 것 같아서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지시했다.
아들이 다시 엎드리고 10초도 되지 않아서 다시 일으켜 세웠으나 아들은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엎드리라며!"
여기서 내가 흥분하면 안 된다. 한 가지로 혼냈으니 한 가지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전부 잡고 혼내기 시작하면 하루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한숨이 났지만 일으켜 세웠다.
"왜 엄마 아빠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알겠지? 앞으로 잘 할 거면 그만하고 자신 없으면 다시 엎드려!"
잠시 후 얼마나 지속될지 모를 약속을 받고 욕실로 보냈다.
"땀났으니깐 가서 샤워해!"
나는 스스로 대견했다. 큰 목소리를 내며 흥분하지 않고 훈육을 한 것 같았다.
중간중간 아들의 돌발적인 행동에 <욱>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잘 이겨냈다. 이건 아들을 성장시키는 과정인지 내가 성장하는 과정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들을 욕실로 보내고 가죽공예를 하고 있는데 내가 틀어놓은 음악 사이로 다른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잠깐씩 끊기기는 했지만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흥얼거리는 목소리 같았다.
<설마?>
나는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는 욕실로 다가가 문에 귀를 가까이 댔다.
떨어지는 물소리와 함께 아들이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방금 혼났고 하물며 울면서 들어갔던 녀석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여유 있게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감이 교차했지만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 나의 훈육이 소용은 있었던 걸까?
둘, 혼났어도 기죽지 않고 넘어가는 성격은 날 닮지 않아서 좋긴 한데... (뭔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다.)
어릴 때 나는 한번 혼나면 며칠씩 주눅이 들어 있었다. 복잡하게 모든 이유를 떠나서 그냥 A형이라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졌다.
나의 그런 성격을 닮지 않았으면 했는데 아들은 일말의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완벽하게 나와 달랐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감정선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나는 욕실 앞에서 굳어져있었다.
결론은
나를 닮지 않아서 기죽지 않는다는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가죽을 만졌던 일요일이었다.
내 새끼지만 나와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존중하며 키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나와 닮지 않은 서운함을 나와 닮아 경이로운 감정으로 끌어안고 공존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