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문에 머리가 끼어도...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말하지 못했다.

by nAmsoNg

그 날은 운이 더럽게도 안 좋았던 날이었다.


통현리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연천읍에 있는 연천국민학교에 진학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버스를 타고 등교해야 했다. 나 역시 8살이 되어 입학을 했고 아침이면 학생들로 붐비는 마을 어귀의 정류장에 십 원짜리를 만지작거리며 버스를 기다렸다. 시멘트로 네모나게 만들어진 정류장에서 디자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담쟁이 넝쿨만 좀 더 붙어있다면 좀비영화의 쓰러져가는 작은 건물을 연상케 했다. 단지 버스가 지나쳐가지 않기 위해 박아놓은 말뚝의 역할 쯤이었다..... 좀 큰 말뚝정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옛날 버스엔 재떨이가 있었다. 좌석에 앉아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져 붙어 있었다. 뚜껑이 덮이지 않을 만큼 많은 꽁초들이 머리를 처박고 덜컹이는 버스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옛날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버스에서 흡연이라니... 우린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변화를 거쳤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현상들이 내 생전에 이뤄진 일이라는 것에 종종 놀라울 때가 있다. 한 가지 더 버스역사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버스요금을 받고 뒷문을 열어주며 정류장을 안내해주던 버스안내양이다. 내 기억에 각인되기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을 보면 나는 한 두번 봤던 기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보다는 안내양에 대한 엄마의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군인가족이던 엄마는 타지에 와서 고생 하고 있는 앳된 군인아저씨들에게 약간의 연민이 있었던 것 같다. 안내양에게 구박을 받으며 내리는 군인아저씨들을 볼 때면

“지 새끼 낳아서 나중에 군대 보내봐야 정신 차리지!” 하며 36개월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군인아저씨의 편에 서서 서운한 감정을 홀로 삼키셨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고 버스로 등교를 할 때는 이미 시골의 버스에도 자동화가 이뤄졌고 안내양이 닫으며

<오라이~~>를 외치던 뒷문은 거친 한숨소리를 내며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버스에 올라 동전박스에 20원을 떨어트렸다. 두툼한 돕바를(옛날엔 외투를 돕바라고 하기도 했다) 입은 사람들은 거칠게 흔들리는 몸둥이를 서로에게 의지한 체 시장의 콩나물처럼 엉켜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으려 언제나처럼 뒷문 바로 옆에 있는 기둥을 꽉 잡고 있었다. 겨우 8살에 키만 쭈삣하고 외소한 어린이였다. 나보다 큰 곤색의 네모난 책가방을 등에 메고 실내화가방을 움켜쥔 어린이는 키 큰 형아들과 어른들 틈에 겨우 얼굴을 내밀고 숨 쉬고 있었다. 학교까지는 두 세정거장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골의 정류장은 꾀나 길었다. 커다란 육교가 보이고 학교에 거의 다 도착했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앞사람이 내리면 차례대로 내릴 수 있다고 믿은 소심한 규범은 그날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있었다. 그 시절 자동문은 미닫이로 열리지 않고 문의 절반이 안으로 접히며 열리는 스윙도어 형식이었다. 버스가 멈추고 뒷문이 거친 한숨을 뱉으며 안으로 접혀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데! 문이 열리며 기둥과 문 사이에 내 머리가 끼고만 것이다. 흡사 그물에 아가미가 걸려 혼신의 힘으로 파닥거리는 물고기 꼴이 되어버렸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버스에서 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 학교를 지나 더 가 본적이 없기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세계로 끌려간다는 것은 입을 쩍 벌린 괴물의 시커먼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답답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소리 한 번을 지르지 못하고 작게 흐느끼며 파닥거렸다는 것이었다. 그 위험 한 상황에서도 무엇이 그리도 창피했는지 <도와주세요!>라든가 <사람 살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닌데 이 소심한 성격은 그 아픔도 혼자 감례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성인된 지금 또 다른 모습으로 내안에 남아있을 것 같아서 바보 같다고 자책하긴 싫지만... 바보 같음을 인정한다. 몇 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고 좋은 구경거리를 보며 내릴 때쯤 어떤 어른이 아이의 머리가 끼었다고 운전기사에게 큰소리로 이야기 해주셨고 그제서야 문이 닫히면서 버스는 나의 머리를 놓아주었다. 눈물범벅이 된 나는 버스에 내려 학교정문에 도착하고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행 중 다행인건 학교에 도착 했다는 것이었다.


나의 목소리가 모르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죽어버리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자기애가 지나칠 만큼 강한 고질병을 갖고 사는 것이 확실하다. 타인 앞에서 전혀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성격을 바꾸려 무단히 노력하기도 했지만 대학시절 발표수업은 항상 A를 받았고 함께 자료조사를 했던 조원들이 있었지만 발표만은 내가 자청해서 하곤 했다. 누군가 나를 집중해주면 차라리 입을 여는 것이 수월했다. 약간의 영웅심리라 생각 해 본적도 있다. 참으로 이상한 성격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집중을 받으면 떨리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나의 행위에 의미가 생기기 때문에 참았던 것 같다. 하지만 불특정다수에게 먼저 나의 목소리를 헌납해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몹시도 창피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 길을 물어보는 것, 식당에서 주문을 하기위해 종업원을 부르는 것,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 등등. 불특정 다수의 앞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내제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강한 자기애와 완벽주의, 그리고 오지랖 넓은 배려로 나는 세상을 다소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진화되어 세상과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치고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이유가 됐고 인터넷을 떠도는 A형의 성향을 대표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 시켰다.


<A형에게 A형이라 물으면 안 된다!> 매거진에 글을 연재하며 실타래처럼 얽히며 완성된 A형의 성향을 대변하고 그들이 갖은 남모를 아픔과 불편함,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오해들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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