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알지만 항상 가슴이 이기는 근거 없는 배려
지금은 최소 중학생만 되더라도 모두 핸드폰으로 소통을 하는 것 같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이 개인용 컴퓨터를 쓰도록 하겠다는 스티브잡스의 야망은 빠른 시간에 실현되었고 이젠 PC를 넘어 모바일로 발전했다.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은 컴퓨터보다 핸드폰이 편하다는 말을 자주하며 알지도 못하는 기능을 마치 제 몸 다루듯 사용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정도는 되야 이 첨단화된 기계를 사용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기껏해야 인터넷쇼핑과 은행업무를 하는 정도로는 이 뛰어난 동물을 다룰 자격이 부족하지 않을까?
모두들 가지고 있다 보니 많은 업체들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핸드폰 영업을 한다. 하루에도 무수히 걸려오는 낯선 전화들이 나의 하루를 끊어놓는 것은 어제 오늘만의 불편함이 아니다.
대출, 설문조사, 보험, 블로그 마케팅제안 등등 업체도 수 없이 많으니 이들이 한 번씩만 전화를 해도 앞 사람과의 대화가 서너번씩 끊기기 일수다. 지금은 어떤 번호가 대출인지 보험인지, 적어도 나에게 필요 없는 전화를 걸러내는 능력이 생겼지만 한 참 전까지만 해도 울리는 전화를 모두 받았었다.
20대에는 내게 필요한 보험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여성분의 말을 끊지 못하고 듣다가 보험에 가입 한 적도 있었다. 물론 보험 하나쯤은 필요하겠다 싶어 내린 결정이기도 했었지만 거절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 한 몫을 했다. 보험을 설명하는 여성분은 언제 숨을 쉬는지도 모를 만큼 열정을 다해 말하고 있었다. 어쩜 그 분은 <안 할래요! > 라는 네 마디조차 들어 갈 틈을 주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성분이 기회를 줄 때
<네>라고 대답하는 것뿐이었고 그 끝은
“네... 네... 네... 010~xxxx-xxxx " 말하고
“네~고객님 가입 되셨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월 10만원이 넘게 들어갔던 보험은 두 세달 만에 해약했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남의 말을 끊지 못하고, 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못하며 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들 알겠지만 예전엔 식당에 들어와서 껌을 파는 어르신들이 계셨다. 애주가라 자칭하기 때문에 20대엔 술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어떤 식당은 손님의 편의를 위해 사장님 및 직원일동 모두 힘을 합쳐 내쫒기도 했는데 소주를 마시며 그 광경을 보고 있자면 내심 안쓰럽고 씁쓸하기도 했다. 껌을 파는 어르신들은 동정심을 유발하기 충분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했고 천원을 껌과 바꿔드리는 것이 그 분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자주 사드리곤 했다. 한 날은 고깃집으로 찾아온 할머님께 껌을 샀더니 서빙을 하던 사장님이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저 할머님 여기 자주 오시는데 밤 되면 그랜져 타고 집에 가세요~~ ”
그 시절 나는 보증금도 없는 반 지하에 하물며 화장실도 대문 옆에 있는 월 14만원(15만원인데 깍았다)에서 살고 있었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누군가를 도와주겠노라고 그분들의 껌을 샀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배신감 보다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스스로 인간 됨됨이가 된 놈이고 나로 인해 세상은 아직 사람 냄새나는 곳이라고 세뇌시켰다. 소주잔을 들이키며 우연히 눈이 마주친 후배는 내 마음을 이해하는 듯 작게 눈을 뜨고 미소 지었다.
나는 껌만 사는게 아니다. 식당엔 파인애플을 파는 청년들이 오기도 했는데 나는 그들을 존경했다. 존경 할 만 한 것이 그들은 처음만나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와우! 나로서는 엄청난 일을 그들은 밥 먹듯이 해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기분 나쁘지 않은 능글한 멘트를 들이밀며 파인애플을 한입크기로 잘라주었다. 그리고는 옆에 앉은 여자가 마치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파인애플을 사지 않으면 그 정도도 사주지 못하는 빈곤하고 사랑이 결여된 남자로 만들어버리며 판매에 성공한다. 하나라도 더 팔아보겠다며 미리 준비한 위트 있는 멘트들을 날리면 나는 그 파인애플을 사서 다음날 해장(?)을 하기도 했다. 내가 사준 파인애플을 가져가는 여자는 없었다.
어쩌면 줏대 없고 귀가 얇은 모지리일 수도 있다. 이 광경을 보는 동료나 여친은 하나 같이 옆구리를 찌르며 말리지만 나는 도통 거절을 할 수 없었다. 껌과 파인애플을 들고 있는 그 손을 민망하게 하는 것이 죄가 되는 듯 지갑을 열어 돈과 바꿨다. 아직도 식당을 찾아오는 소위 잡상인들의 물건을 심심치 않게 사드리는 편이다.
뾰족하게 설명 할 수 없는 이 무지한 배려로 불편한건 옆자리에 앉아 그 것을 바라보는 누군가일 뿐이다. A형인 당사자들은 상술에 끌려 본의 아니게 지갑을 열었더라도 크게 후회 하지는 않는다. 그 선택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에서 하는 것이기에 그럴만 했다고 생각하며 혹은 잘 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기도 한다.
누구나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식당에 불쑥 나타나 몇 천 만원짜리 대출을 하라느니 담보를 서라느니 하는 잡상인은 없으니 A형과 함께 사는 분이라면 그들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래봐야 껌은 천원이고 파인애들은 3개 만원일 것이다.
어제도 나는 코로나 설문조사라며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하물며 자동응답 시스템이었다.)
“매우만족이면 1번, 만족이면 2번 어쩌구 어쩌구 ”라는 질문에 다이얼의 숫자를 솔직하고도 정확하게 누르고 있었다. 3분여가 넘어가도 질문이 끊이질 않길래 그제서야 전화를 끊고 바쁜 업무를 마저 봤다.
A형은 이렇게나 거절을 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