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죽거든 술독 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
남자라면 소주 한 잔 정도는 목구멍에 집어던지듯 털어 넣어야 한다고 주당들은 이야기 한다.
주위에서 술 좀 마신다는 분들은 대부분 50ml의 소주잔을 부딪히고 한 번에 털어넘기신다.
아버지도 작은 아버지들도 외가댁에 이모부도 그러셨다. 대학에서 만난 동기들과 선배들도
학계에서 통용되는 수학공식처럼 소주잔을 한번에 해치웠다. 남자라면 화끈하게 털어넣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에서 술을 배웠다. 나 역시 대장부라도 되는 듯 술자리에서는 언제나 한번에 소주를 털어넣었다.
그 때 그일이 생기기 전까지 말이다.
이야기는 군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중대는 소수의 인원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곳 이었다. 국가의 안보에 소명을 다하고 있고 내발로 지원 한 곳이라 힘들지만 자부심이 대단했다. 훈련이 많아서 정기휴가도 겨우 갈 정도라 잦은 훈련의 피로를 푸는 것은 당직사관을 피해 담벼락으로 넘겨받는 족발에 소주대꼬리 한 병이었다.
그 것도 짬밥이 되야 누릴 수있는 호사였다. 상병이 되기 전까지의 쫄따구들은 선배가 부르면 못이긴 척 한 잔 마시고 침구속으로 들어 가야했다. 대학 1년 내내 술로 만든 낭만속에서 헤롱거리던 내게 훈련만큼 힘든 것이 금주였다.
일 년에 한 두번 중대에선 파티를 했다. 모든 훈련을 중지하고 돼지 한마리를 잡아서 신나게 먹고 놀 수있는 시간이다. 보급창고에서 술을 꺼내오라는 선임의 지시에 설레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목구멍에 알콜칠을 하는구나!>
입대 후 처음 마시는 술이었다. 내게 할당 된 술은 소주 반병에 맥주 1병이었다. < 애게? 나 주당이라고!!! >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갓 일병을 가슴에 박은 쫄따구였다. 쫄따구들은 중대 파티때도 긴장을 놓칠 수없다. 선임들의 온갖 심부름을 실수 없이 이행해야하기 때문이다.
대장님의 건배사를 시작으로 파티가 시작되었다. 코앞에 있는 술잔이 간절히 나를 응시 하고 어금니 뒤에선 침이 자꾸 고이고 있었다. 불판위의 삼겹살은 기름을 뱉어내며 몸을 떨고 있었다.
군대는 계급체계지만 술자리에서 잔을 부딪힐 때는 평등했다. 모두 한 손으로 친구처럼 건배를 했다.
선임자가 윗 사람은 맞지만 전시에 서로를 의지 해야 하는 전우이기에 한 손으로 건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멋있었다! 전우…. 100평 남짓 되는 식당을 둘러봤다. 한켠에 자리잡은 작은 테이블에 대장님과 주임원사님 및 장교 몇몇이 점쟎게 술잔을 들고 있었다. 떠들썩하게 술잔을 들이키며 고기를 굽는 전우들이 보였다.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북받치는 감성은 그 순간도 나를 놓지 않았다.
강한 소속감과 자부심으로 목에 힘을 주어 소주를 삼켰다. 아직 내겐 3~4잔의 소주와 맥주 한병이 남아있었다. 한 잔정도 더 했을까? 선임이 심부름을 시켰다. 다녀와보니 다른 소대 병장이 내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 술잔이 주인 잃은 슬픔으로 훌쩍이며 다른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더 슬펐다. 처음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버렸다. 엄마생각을 하며 달리는 하니보다 빠르게 소각장으로 달려갔다. 술로 채우지 못한 위안을 줄담배로 삭히며 파티는 끝이 났다.
상병 7호봉쯤 중대의 실세가 되었을 때 중대 파티가 한 번 더 열렸다. 이건 기회였다.
우리중대는 병장까지도 자유롭게 음주를 할 수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새벽에 몰래 담벼락 넘어로 받는 족발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중대 파티는 술을 마실 수 있게 허락 된 한 번의 기회였다.
보급창고의 술을 내리는 것을 내가 지시 할 수 있었다. 술을 내리는 후임에게 지시했다.
< 술 안 마시는 애들 있지? 걔네 할당량 모두 챙겨와! >
파티가 시작 되고 지난번 쫄따구 때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여유롭게 술을 즐기는 낭만따위는 설 자리가 없었다. 며칠을 굶은 들개가 먹이를 먹듯이 개걸스럽게 털어 넣었다. 술 꾀나 먹는다고 자부 하던 나도 몇 개월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던 술을 마시니 금새 노곤해졌다. 노래방을 한 두번 들락 거리더니 정신을 잃었다. 순검때 정좌로 앉아서 당직사관을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지만 이후의 기억이 끊겨버렸다.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개인신변정리 및 쉬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옆자리 병장 선임자의 매트리스에 파티때 먹은 것을 꺼내 놓은 것이다. 하물며 그 매트리스는 며칠 전 보급창고에서 폭신할 것으로 골라서 선임이 직접 내린 새 매트리스 였다. 숙취가 있을리 없었다. 정신이 번쩍들었다. 상병7호봉이 실세라고는 하지만 병장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선임은 용인대 태권도과 선수출신이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선임을 찾아 갔다. 때리면 반성하며 맞기로 단단히 마음 먹었다.
선임은 오전부터 공을 차고있었다. 선임을 부르지도 못하고 경기장의 터치라인쯤에 쭈삣쭈삣 서 있었다. 선임이 나를 발견했지만 씨익 웃더니 이내 오진 않았다. 더 불안해졌다. 이상황에서 웃다니 더욱 공포스러웠다.
공이 내 근처로 굴러 왔을 때 선임이 공을 가지러 오며 말했다.
< 어제 기억은 나냐? 뭔 술을 그리 먹노? 내꺼 새 것처럼 빨아놔라잉~ >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경상도억양을 의미심장하게 던지고는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선임의 군용 3단 매트리스를 들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작은 중대라 샤워장 한 켠에 세탁기가 있을 뿐 빨래만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매트리스가 세탁기에 들어갈리가 만무했다. 국방색의 시트를 벗기고 알몸이된 스펀지를 샤워기를 들고 세제와 함께 밟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트는 세탁세제를 풀어 놓은 따뜻한 물에 담궈 놓았다. 미끈거리는 매트리스의 흔적은 빠질 기미가 안보였다.
어제 먹은 것이 무엇이었던가! 삼겹살이다. 매트리스는 삼겹살을 구으며 나오는기름에 담겨진냥 미끈거림을 쉽게 뱉지 않았다. 매트리스와 시트를 번갈아 가면서 밟고 또 밟았다.
하루종일 눅눅한 샤워실을 나오지 않고 세제를 뿌리고 헹구는 작업을 반복했다.
매트리스를 밟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마치 생각을 하기위해 걷는 기분이었다.
못나고 미련한 스스로를 꾸짖고 있었다. 술이 뭐라고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눌러담듯 악착 같이 밀어 넣었을까…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정도였다면 후회도 덜 했을 것이다. 그런 추잡한 짓을 저지르고 하루종일 샤워기를 들고 매트리스를 밟고 있으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누누이 실수 없이, 흔들림 없이, 앵무새처럼 했던 말을 반복하는 주정 없이 술을 마시려 했는데 그날은 정신줄을 놓았다. 술을 멋있게 마시고 싶었는데 추하게 먹은 꼴이 되어버렸다. 매트리스를 밟으며 생각 또 생각, 반성 또 반성을 했다.
선임이 씨익 웃으며 내게 시킨 빨래는 내게 반성의 시간을 준 것만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선임이기도 했지만 그 뜻이 고마웠고 멋있었다. 홧김에 나를 몇 대 때려도 아무일 없을 곳인데 하루종일 빨래만 시켰다.
만약 맞고만 끝났다면 반성의 시간은 깊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의 기나긴 빨래를 마치고 한가지 음주습관을 고치기로 했다.
<술은 반 잔씩 천천히 마시기로! 틈틈히 멀쩡한 정신을 챙기며 무리하지 않기로!>
그 결심 이후로 아직까지 소주는 반 잔씩만 마시는 것을 지키고있다. 실수가 잦은 편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많이 줄었다. 따로 주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만에 만나는 친구와 한 잔을 할때면 특히 더 흐트러지는 스스로를 경계하며 잔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