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낮술을 한다

<나 죽거든 술독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by nAmsoNg


낮술은 어미 애비도 알아보지 못 한다며 금기시 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주가 남편을 둔 아낙네의 심술 섞인 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아침부터 마셔도 우리부모님을 잘만 알아본다.


제대를 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군대까지 다녀온 성인이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스스로 내키지 않았다. 복학할 때까지 등록금과 용돈이라도 벌어 볼 양으로 시작한 알바는 문래동에 있는 LG 홈쇼핑 보안요원이었다. 주야간 교대 근무를 서야 해서 3일에 한 번은 밤에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 했다. 함께 일하던 반장님은 푸근한 인상의 아버지뻘 되는 분이셨다. 보안요원 대다수는 30~40대정도의 아저씨들이었는데 갓 전역한 내가 아들 같으셨는지 유난히 잘 챙겨주시고 예뻐해 주셔서 반장님을 잘 따랐다.


한 날은 야간근무 중인데 반장님께 무전이 왔다. 지하 주차장의 주차정산실로 오라는 무전 이었다. 냉큼 지하로 달려갔다. 주차장 입구에 게이트가 연결된 정산실은 2인 1조로 경계근무를 서는 작은 초소 같았다. 반장님은 그날 정산실 근무였다. 도착하니 정산실 바닥에는 골뱅이 통조림과 막걸리가 있었다. 새벽이라 출차 하는 차도 없고 하니 막걸리나 한잔 하면서 밤 근무를 보내자는 것이었다.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무전에 귀 기울이며 반장님과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정산실의 바닥에 둘이 앉으니 바깥에선 보이지도 않고 아늑했다. 신문지 위에 차려진 새벽 술상은 정겨웠다. 자리를 만들기 위해 방금 전 슈퍼를 다녀오신 듯 검은 봉다리엔 차가운 막걸리에서 묻은 물기가 가시지 않았다. 반장님은 사모님과 연애 때 이야기를 해주셨다. 머리에 짜장면이 묻을까 봐 한 손으로 늘어진 머리를 가지런히 잡고 짜장면을 먹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고 회상하시며 그 모습에 반해서 결혼했다고 하셨다. 아들들 이야기와 일하면서 생기는 고충들도 서슴 없이 이야기 해주셨다. 아버지뻘이었지만 대화가 썩 잘 통하는 편이라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주당들의 술자리가 언제나 그렇듯이 어느새 막걸리가 똑떨어졌다. 반장님은 절제를 강조하시며 딱 2병만 더 사 오라고 하셨다. 2병이면 충분히 절제하는 것이니 우리는 상황이 생겨도 끄떡 없이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으로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정산실을 나갔다. 술자리는 이어졌다. 반장님은 아침에 퇴근하는 날이면 집으로 걸어가는 동네 어귀의 작은 대폿집에 들러 막걸리를 한잔한다고 하셨다. 몇 년을 넘게 다닌 단골집인데 주인 할머니는 두부김치를 차려주고는 다 먹으면 알아서 돈 내고 가라며 방으로 들어가신다고 했다. 손님 하나 없는 낡고 좁은 가게에서 홀로 앉아 푸짐하지 않은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기울이는 반장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 아버지들이 짊어진 무게를 대폿집에서 위로받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철없던 나는 마냥 낭만적으로 보였다.

<언제 저도 데려가시면 안 돼요?>


주차정산실에서의 비밀스러운 추억을 갖고 근무하던 중 반장님 호출로 담배를 태우는 곳으로 갔다. 오늘 아침 퇴근인데 전에 이야기한 대포 집을 같이 가겠냐고 물어보셨다.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밤 근무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반장님과 퇴근을 서둘렀다. 영등포 어딘가의 허름한 시장의 입구쯤이었다. 시장은 낡은 포대자루를 덮고 아직 잠들어 있었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바쁜 발걸음 소리가 시장의 아침을 깨울 것만 같았다. 반장님은 덜컹이는 미닫이문을 열며 할머니께 인사했다. 직장 후배와 함께 왔다며 나를 소개했지만 할머니는 무심하게 나를 한 번 보시고는 어제의 습관처럼 몸을 돌리셨다. 몸에 밴 듯 두부김치를 뚝딱 만드시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두시곤 방으로 사라지셨다. 두부김치 외에 모든 것은 반장님이 직접 준비하셨다. 젓가락도 놓으시고 물과 막걸리, 술잔도 손 수 준비하셨다. 반장님은 마치 엄마네 집에 온 듯 너무 자연스러웠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서야 끝이 났다. 점심을 따로 먹지는 않았다. 오전 내내 마신 막걸리로 이미 배가 터질 듯했다. 트림을 할 때마다 막걸리 특유의 냄새가 콧구멍까지 새어 나왔다. 술 내음이 그윽한 아빠 냄새가 나는 좋았다. 술자리는 끝났지만 여운을 간직 한 향기였다. 반장님은 전철역까지 배웅해 주신다며 함께 대폿집을 나왔다. 거하게 마신 막걸리는 우리를 한층 더 친하게 해주었다. 남자 둘이 손을 꼭 잡고 정겨운 술 걸음을 이어갔다. 아침의 쌀쌀하고 인적 없던 시장 통은 이미 많이 북적이고 있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서로의 걸음을 배려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른다. 언제나 내 안에 아픔이 자리 잡고 있고 술을 한잔할 때면 위로받고 싶어진다. 위로받으려 손을 뻗거나 안아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술의 취기가 내 몸 곳곳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허락하고 음악을 듣는다. 술이 깨면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글씨로 글을 쓰기도 하고 홀로 노래방에 가서 아픔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날은 아버지 같은 반장님의 두툼한 손을 잡고 걸으며 위로가 되었다. 아직도 출처 모를 아픔과 공생 중이다.


인천으로 향하는 대낮의 전철은 한산했다. 한 편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취기가 내 몸을 더듬는 동안 음악을 들었다. 정거장의 안내방송이 들릴 정도의 크기로 나른한 몸에 음악을 뿌리고 있었다. 한참 후 누군가 깨워서 눈을 뜨니 아무도 없는 전철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었다. 출입문이 열린 전철 밖으로 <인천>이라 적힌 팻말이 보였다. 아차 싶었다. 잠이 들어서 소사역에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온 것이다. 나른 한 몸을 일으켜 반대쪽 정거장에서 청량리 행 전철을 탔다. 종점에서 탔으니 여유를 부려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전철이 달리자 창밖의 배경들이 뒤로 쓰러졌다. 이어폰의 음악은 더욱 나를 나른하게 했다. 내가 눈을 깜빡하고 떴을 때 아뿔싸! 청량리에 와있었다. 이쯤 되면 이건 주정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게 조용한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스스로 한심해졌다. 무거운 걸음으로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가서 인천행 전철에 올랐다. 밤 근무로 한숨도 못 잔 데다가 아침부터 마신 술은 대낮의 따스함이 모세혈관 깊숙하게 스며들게 했다. 눈꺼풀이 하염없이 주저앉았다. 그렇게 갈아탄 전철을 타고도 인천과 청량리를 한 번 더 왕복하고 나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는 이미 떨어져 없었고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이제 전철을 타는 일은 거의 없다. 운전대를 맡길 수만 있다면 해가 중천이라도 낮술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비가 와서 외출이 귀찮은 축축한 일요일이나 연휴로 시골의 본가를 가면 나는 아직 낮술을 챙긴다. 한낮의 더위로 발끝까지 뻗은 술기운을 야릇하게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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