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의 금가루

<나 죽거든 술독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by nAmsoNg



결혼을 하자마자 사업차 경남 양산으로 내려갔었다. 나는 의욕이 충만 한 젊은 아빠였다. 처음으로 꾸린 가정에 대한 설렘과 책임감이 공존하는 무거운 행복이 시작되던 때였다. 친구가 많지도 않았고 더욱이 낯선 곳에서 친구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성향상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퇴근길 술 약속도 욕심이 없었고 함께 잔을 기울일 사람도 없었다. 일찍 집에 가서 막 뒤집기를 성공한 아들을 보는 시간이 더 소중했다. 술자리는 마누라가 해주는 따뜻한 밥에 반주로 소주 한 잔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 자주 마신다고 구박도 받았지만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어떠한 취미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타당한 이유로 반주를 이어갔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희망이 있었다. 타지에 데리고 내려온 미안함으로 친구를 만나거나 술 약속을 잡지 않은지 일 년 정도가 지났다. 나도 슬슬 친구와의 술자리가 그리워졌다. 그러던 와중에 연휴가 생겼고 와이프에게 친구를 만나러 인천에 다녀오겠다고 통보했다. 통보해야 했다. 와이프는 갖은 이유로 나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행하지 않으면 문밖을 나설 수 없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 드디어 친구를 만났다. 사내 둘이 만나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쌓인 회포를 풀 생각에 설레 있었다. 친구는 나와의 술자리에서는 카드를 써도 된다며 와이프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마치 귀한 손님이라도 만난 듯 친구는 미리 계획해둔 장소로 나를 안내했다. 회사 다니며 선배들과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장사가 잘 돼서 크게 확장까지 한 맛집이라며 연신 입을 바쁘게 움직였다. 도착한 곳은 깔끔한 참치집이었다. 겉보기엔 그리 비싸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삼겹살집보다는 비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와 그것도 허락된 카드를 손에 쥐고 술과 함께 먹는다는 것은 정말 짜릿한 일이었다. 친구는 와이프에게 허락을 받았고 나의 와이프는 300km나 더 떨어진 곳에 있었다. 누구도 우리 앞을 막을 수 없는 자유 속에 있었다. 우리는 요리사가 손질 한 회를 그때그때 올려주는 바에 앉았다. 친구가 먼저 메뉴판을 훑어봤다. 1인 가격은 세 분류로 나눠져 있었다. 가장 비싼 것과 중간, 그리고 가장 저렴한 것. 친구는 중간쯤 되는 가격을 가르치며 어떠냐고 물었다. 너무 싼 것은 먹이기 미안하고 그렇다고 너무 비싼 것은 부담이 되는 듯했다. 친구와 함께하는 술자리로 이미 충분하기에 중간 정도 되는 금액의 메뉴를 선택했다. 정갈하게 나오는 기본 메뉴가 놓이는 동안 소주 주문을 서둘렀다. 우리는 빨리 잔을 부딪치며 서로 얼마나 그리웠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점잖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른이 아이스크림을 까주는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었다. 술과 몇 점의 참치가 맛깔스럽게 놓였다. 우린 잔을 들었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가장의 어깨 위에 짊어진 무게를 말없이 위로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담아 두었던 말 못 한 감정들은 소주를 한 병도 비우기 전에 쌓여갔다.


소주를 두 병쯤 비우고 세 병째 소주를 잔에 따를 때였다. 훤히 보이는 주방의 한편에서 요리사가 참치 머리를 정성껏 손질하고 있었다. 친구를 툭! 치며 눈짓으로 보라고 가르쳤다. 잘은 모르지만 고급스러워 보였다. 참치의 이마 위에 금가루가 뿌려지고 두 잔으로 나눈 술잔에도 금가루가 뿌려졌다. 우리는 들고 있던 잔을 부딪치며 가난한 우리의 현실을 한탄하고 있었다.

<이야~~ 비싸 보인다.>

<그러니까~~ 돈 벌어야 한다니깐~~>

씁쓸한 마음을 빨리 달래려 비워진 잔에 술을 따르고 연거푸 한 잔씩을 더 마셨다. 요리사가 준비된 참치를 들었다.

<야!야! 다 됐나보다! 누구한테 가나 함 보자! 맛있겠다.>

기역 자로 된 바에는 우리 말고도 세 네 팀이 조촐히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도 있었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중년의 아저씨들도 있었다. 괜한 자괴감이었을까? 우리들보다는 다들 여유 있게 사는 듯했다. 대놓고 쳐다보면 그나마 지키고 있던 가오가 상할 것 같았다. 우린 서로를 향해 어깨를 돌리고 있었지만 곁눈으로 참치를 담은 쟁반의 행적을 따라갔다. 들고 있던 술잔도 숨을 죽였다. 우리 앞을 지나 요리사의 두세 걸음이면 충분히 어딘가에 도착할 거리였다. 참치가 막 우리 앞을 지나나 싶더니 우리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는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말없이 쳐다봤고 약속이나 한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힘주어 참았다. 웃음을 너무 참아서 얼굴근육이 아프고 배가 아팠다. 우리 메뉴인지도 모르고 신세를 한탄하고 그 참치를 몰래 지켜봤던 우리의 모습이 너무 웃겼다. 금가루가 올려진 귀한 참치 덕에 우린 12병의 소주를 비우고 장렬히 전사했다.


양산에서의 사업 실패로 나는 처참히 무너졌다. 가정을 지키기도 어려울 만큼 너덜 해진 패잔병의 모습으로 인천에 올라왔고 이제야 좀 살만해졌다. 그때 내게 금가루가 올려진 참치를 대접하던 친구는 도시의 번잡한 삶을 버리고 남해의 관광지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또다시 멀리 떨어져서 가장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묵묵히 지고 살고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일 때 우리 둘만이 나눠 가질 수 있는 삶의 무게를 쌓는 중이다.


< 친구야! 한 번 올라와라! 이번엔 내가 금가루 올린 참치 사줄게! 그 참치집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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