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은 아쉽고 결혼은 벅차다 02>
늦은 퇴근으로 한적한 해안도로를 따라 퇴근하던 길이었다.
이미 어둠이 짙어졌다는 사실이 사뭇 억울했다. 하루종일 업무에 치여서 퇴근하면 언제나 나의 태양은 지고 없었고 나를 반기는 것은 별마저 자취를 감춘 어둠이었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애창곡들은 왜 항상 애절하기만 한지 그날 따라 가슴이 먹먹해지는 퇴근길이었다.
중학교때가 생각났다. 시계부랄마냥 맥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던 학교생활에 회의를 느낀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 무단결석을 했다. 나쁜 친구들의 꾐에 넘어간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 나쁜 친구였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없는 것 같아서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날의 퇴근길이 그러했다. 일은 매일 하는데 생활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하루종일 일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막막하니 의욕을 잃었다. 손에 꼭 쥔 아비의 책임으로 겨우 힘주어 버티고 있었다. 남편으로의 책임도 그땐 필요 없었다. 형편 없는 놈이라면 버려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단지 앞으로 성장 할 내 아들의 미래가 늦은 밤까지 내가 버티는 유일한 이유였다.
행복을 도시에서만 찾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방향이 의심스러웠다.
일찍 귀농해서 농사지으며 소소하게 살면 나아질까? 하지만 그 삶도 가정경제의 현실 앞에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했다. 경제력이 없는 남자는 사랑을 전제로 맺은 배우자마저 외면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바가 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속에서도 나는 내 가족의 구성원들 앞에서 당당해야 했고 자신감 있어야 했다. 거짓으로 그렇게 어깨를 펴고 사는 것도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나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는 가장이었다.
20여분이면 도착 할 가까운 거리에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가깝지만 매일 같은 생각을 해서 가능 했는지도 모른다. 홀로 있을 때마다 무기력한 망상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날은 주차장에서 한참동안 멍 하니 앉아 있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했고 내가 잡은 책임의 끈들을 꼭 잡은체 괴로워했다. 손에 감아쥔 책임의 끈이 너무 무거워서 손에서 피나가는 듯 했다.
엘리베이터에 내려 캄캄한 복도를 걸었다. 업무를 마친 복도의 센서등이 귀찮은 듯 켜졌다.
불청객 같은 대접에 이미 익숙한 기분이었다.
혼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혼자 간단한 음식을 차리고 술을 마시며 정리 되지 않은 하루의 등을 떠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