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거든 술독 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 모르쟎아>
<래프팅 하러 안 올래?>
전역 후 보안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군대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동네 아는 형님이 래프팅 가이드를 모집하고 있다면서 단양에 내려와서 해보길 권하는 내용이었다.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것보다는 매력 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보안업체를 마무리하고 더위가 시작되던 6월에 단양으로 향했다.
단양은 처음이었다. 무엇이 유명한지 산이 많은지 계곡이 많은지 농촌인지 관광지인지 전혀 몰랐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한적한 산길을 굽어 돌아 단양에 도착했다. 2시간 반 정도의 여정이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버스의 계단을 세 듯이 한 발 한 발 야무지게 내려갔다. 2시간이 넘게 고속버스의 의자에 길들여진 허리를 세워 기지개를 폈다. 맑고 상쾌한 공기가 박하향처럼 코를 찌르고 병풍처럼 둘러싼 산맥으로 아늑한 느낌이었다.
터미널 밖으로 나가니 친구가 형님이라고 소개해 주신 분이 배웅을 나오셨다. 작고 호리호리한 체구에 썬그러스를 머리띠처럼 올려 긴 머리를 단정하게 추슬렸다. 머리를 쓸어넘긴 썬그러스 때문에 똑 부러진 이목구비가 선명했다. 시골에서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영기 소개받고 온 친구구나?>
사장님은 단번에 나를 알아보셨다. 내 인상이 썩 서울 남자 같지는 않은데 의아했다. 작은 마을이라 타지인을 바로 알아본 것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우리 업체의 팀원은 대부분 두세 군데의 다른 대학에서 모인 체육과 1학년 후배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차량 운행을 할 인원은 내가 유일했다. 군 입대 20일 전에 면허가 나오고 바로 군에 입대를 했으니 도로주행 경험이 1도 없는 초보운전이었다. 열쇠고리에 차 키 하나만 단정하게 달린 이스타나 키를 받으며 단양에서의 새로운 추억이 시작되었다. 래프팅은 한 철로 운영되다 보니 사무실이 반듯하지 않았다. 컨테이너 하나에 컴퓨터와 전화를 두고 업무를 봤다. 우리 사무실 바로 옆에는 여러 해 운영을 해서 인지도가 있는 업체가 있었다. 사장님들끼리도 형 동생하는 사이고 가이드 형님들과도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 해 새로 오픈한 우리 팀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옆에 있는 업체의 형님들에 비하면 막내 수준이었다.
손님을 태운 마지막 보트가 들어오면 퇴근을 했다. 노곤한 몸으로 단양에 들어오면 형님들과 자주 한 잔씩 하곤 했다. 서울과 다른 음주 문화가 있다면 단양의 술집은 모두 밤 10시면 문을 닫는 것이다. 새벽까지 마실 수도 없고 술을 마시러 새벽에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모두들 술집의 영업이 끝나면 헤어져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이제 목을 축였을 뿐인데 집에 간다니 앞으로 남은 밤이 나를 구슬프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로 돌아가기 싫은 어느 날 24시 편의점을 발견했다. 술을 더 마실 멤버와 함께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술을 끌어안고 깊은밤속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의 안주는 깊은 맛을 주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그땐 무엇이든 잘 먹고 많이 먹었던 20대 초반이므로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술이 떨어질 때마다 바로바로 꺼내 먹는 술창고 옆에서 마시는 것 같았다. 이야기가 끊기지도 않고 술이 부족할 까봐 안주에 맞춰 배식하듯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 보도블록위에 앉아 있었지만 산에서 내려오는 상쾌한 바람은 여전히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술이 취하고 깨기를 반복하니 나의 새벽에 술이 머물기 불편함이 없었다. 이후에도 마시던 술이 부족할 때면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강변의 공원에 술상을 차렸다. 단양은 산맥에 둘러싸여 있으며 산맥을 따라 남한강이 돌아나가는 곳이라 작은 섬처럼 아늑했다. 밤엔 별이 쏟아질 듯 청량했고 산에서 부는 바람으로 끈적이는 더위가 이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사우나를 마치고 나온 상쾌한 컨디션으로 술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강변에 앉아 술을 기울이는 낭만은 내게 일상이 되었다. 언제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밤이면 술과 함께 앉아 있는 모든 곳이 구름 위 같아서 신선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집이 엄했던지라 나의 여동생은 외박을 한 적이 없었다. 동생이 대학 1학년이 되던 해에 오빠가 단양에 있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동생은 고교 친구들과 단양에 놀러 왔다. 래프팅을 이틀이나 연이어 하고 단양관광을 마친 그녀들의 술자리는 3일간 이어졌다. 나는 매일 밤 그녀들 옆자리에 앉을 새로운 남자들을 섭외했다. 첫날은 나와 함께 일하는 동생 또래의 남자들, 둘째 날은 군대 동기의 친구들인 2살 터울의 오빠들, 셋째 날은 래프팅을 하며 만난 선배들이니 그녀들에겐 네 살에서 많게는 7살이 많은 오빠들도 있었다.
동생과 친구들은 지금까지 그때 단양여행을 정말 원 없이 놀았던 날로 회상한다.
동생은 성인 남자만큼이나 술을 끄떡없이 마시는 편이다. 밤새 술이 떨어지지 않게 술을 나르기도 했고 편의점으로 자리를 옮겨서 문 닫을 걱정 없는 야외 주점을 알뜰하게 즐겼다. 그때 동생들이 숙박하던 펜션은 단양 읍내에서 차로 20여 분 정도 가야 하는 산속에 있었다. 강변의 작은 공원에서 술을 마시던 어느 날은 술자리가 끝난 동생들을 펜션에 데려다줘야 해서 나는 간단히 마시고 옆의 벤치에 먼저 몸을 뉘었다. 아무리 쪼그려도 덮고 잤던 야상을 다리까지 내리지 못하며 쌀쌀함을 느낄 때였다. 동생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오빠 펜션 데려다줘~>
밤새 야상에 체온을 의존했던 몸을 일으켰다. 인상을 찡그리며 겨우 눈을 뜨니 물안개가 강물 위를 서성이고 잿빛의 새벽이 어둠을 삼키며 밝아오고 있었다. 요것들이 밤새 술을 마신 것이다. 내가 자주 하던 짓을 동생이 똑같이 하니 무서우면서도 대견했다. 동생과 술잔을 나누던 장정들은 한두 명만이 겨우 숨을 붙이고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함께 술자리를 시작했던 나머지 서너 명은 동생의 건배에 하나씩 쓰러져 벗어놓은 옷처럼 벤치에 걸쳐져 있었다. 나의 여동생은 술자리를 평정하고 당당하게 내게 귀가 요청을 한 것이다. 자랑스러웠다.
그 시절 단양은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첫 번째 신호등을 지나 단양을 빠져나가며 보이는 마지막 신호등까지 달랑 4개의 신호만 있던 한적 한 곳이었다. 10시면 문을 닫아서 일찍이 음주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그들의 술 문화는 나로 인해 바뀔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술자리를 만들고 밤새 술을 조달 받는 밤샘형 술 문화의 정착이 나로 인해 시작된 것이다.
술집이 문을 닫는다고 멈춰 서야 되겠는가! 어떻게든 찾아 마셔야지! 긴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