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조각우울

알고도 모른 척 하기

by 알담

“만약 내가 너를 사귀었다면 너 다음에 다른 사람 못 만났을 것 같아. 너만의 매력이 있어. 너는 내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 중에서도 유독 깊은 사람이야.”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고 짚기 어려운 감정이 들어 잊기 전에 적어둔다.


잔잔하게 우울하던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오늘 처음 잡아냈다. 내 세상이 점점 좁아지는 듯한 느낌이 불안했고 나에게 실망스러웠던 거다. 빡빡한 하루를 보내야 그나마 안심이 됐고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그런 나를 아직도 이렇게 기억해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선이 좁아져서 보여주고 말로 해줘야 깨닫는게 매번 바보같다. 나는 항상 친구들만큼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자존감이 채워지는 기분은 오랜만이라 어색할 정도다.


내가 자각하는 것보다 더 이기적이면 어쩌지? 내 마음의 생채기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너의 상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내 피곤함을 숨기지 못하면 어쩌지?


사회생활은 좋은 핑계가 된다. 사회생활하느라 무심해졌어. 여기저기 치이다보니 냉정해졌어.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그런 것도 있지만, 너가 그렇게 보이길 원한 거 아니야?

맞아.

속마음을 끄집어준게 차라리 고마웠다. 어물쩡거릴 틈도 없이 인정했다. 맞아. 나 그렇게 보이고 싶었어. 친절해보이고 싶지 않고, 따뜻해보이고 싶지도 않고, 아무한테나 쉬워보이고 싶지도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냉랭해지기로 내가 선택했어.


말보다 글이 편해서 언제나 속마음은 글로 썼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글로 전할 마음을 입밖으로, 목소리로 전해주는 친구가 더욱 놀랍고 고마웠다. 나도 그날은 평소답지 않게 노력했는데 결국 또 빙빙 돌리는 말로 끝내고 말았다.


사실은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내가 챙기지 못한 관계들. 놓치고 있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들. 흘러가는 걸 보고만 있던 그때의 나.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는데도 우수수 흩어지는 것들을 무시해야 여린 자존감을 세울 수라도 있었다.


좋아하는 걸 한다고 했잖아.

가끔 말뿐인 것 같아서, 그럼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아서, 그 끝에는 내가 사라질 것 같아서 무서웠다.

너무 좋아서, 더 빠져버릴 것 같아서, 좋아하느라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경험에 기반한 두려움이라 실체를 느낄 수 있었다.

진짜로 좋아한 적 있어? 진심을 다해 열심히 했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느낌은 찝찝했다. 그 감정조차 덮어버리느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까지도 얼마나 모른 척을 했었는지.


점점 더 나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가지고 있는 단어의 수가 적어진다. 골라봤자 거기서 거기인 글자들을 나열하려니 답답해서 금세 그만둔다. 내가 그간 쌓아올린 단어의 페이지가 자꾸 찢겨 흩날리는 것 같다. 말을 잃어버리니 입을 뗄 수가 없다. 글자를 더듬을 수 없으니 써내려갈 수도 없다. 무난한 일상을 버텨내는 것이 고작이라 하루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분을 그대로 뒤집어 썼다. 개학 전날 방학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묵혀둔 감정을 처리하려니 이미 망각 속으로 들어간 후였다.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묻혀서 스며들었다. 그랬더니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게 됐다. 가끔은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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