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담파스타

지금에 충실한 참치 토마토 파스타

by 알담

가끔 프랑스에서의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긴장한 태도가 기본 상태였던지라 긴장한 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그전까지 겪지 못했던 감정과 경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외려 담담하게 지냈던 게 한참 뒤 한국에서 돌이켜 보니 커다란 모랫바람같이 들이닥쳐 주워 담기도, 다시 걸어 들어갈 수도 없게 돼버렸습니다.


하루 살아내는 게 벅차서 그때 적은 글은 많지 않아요. 기록을 많이 할 걸 후회하기엔 그때 매번 최선이었던 스스로를 알고 있어서 더 이상 책망하는 말을 얹을 수가 없달까요. 행복한 날이었든,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든 때때로 어떤 식의 일기를 적는 날이면,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그 일기를 읽을 때면, 어떻게 그 시절을 살아냈지 싶어 그냥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어집니다.


프랑스에 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중 하나는 한국에 돌아갔을 때의 저를 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에 평생 있지 않을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나를 그곳에 맡길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굉장한 고역을 겪은 것 같은데, 물론 힘들지 않았다곤 할 수 없지만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잦았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인생에 이런 즐거움이 또 있을까 싶어서 저는 나중을 위해 현재를 조금 덜 즐거워하기로 했습니다. 한 발짝 떨어져 3인칭으로서 그 즐거움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돌이킬 때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요.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나중을 생각해서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동시에 현실에 몰입하지 않는 것. 너무 양가적인 마음이라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데요. 사실 그건 그냥 제 오랜 성격이었습니다. 어떤 것이 너무 좋아서 마냥 계속 아끼고 싶은 마음.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어느 순간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는 모양새.




어렸을 때는 캔 참치를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오히려 그 손바닥만한 캔 하나를 다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다 먹어버리면 다음번에는 먹을 수가 없잖아요. 반절만 먹든, 손톱만큼 남겨서 다음 식사에 한 숟갈이라도 곁들이든 그렇게 매번 다 먹지 않고 남겨두곤 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미웠던 것 같아요. 동생은 그런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이 캔 참치를 땄다 하면 그대로 와르르 밥그릇에 얹어서 다 먹어버리곤 했으니까요. 심지어 제가 다음을 위해서 남겨둔 조막만 한 참치를 가끔은 말도 없이 밥반찬에 써먹곤 해서, 이후에 냉장고 문을 열고 망연자실한 제가 매번 고함을 지르곤 했습니다.


뭐 대단하게 찢어질 듯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형제와 함께 자랄 때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하는 약육강식의 사회 체계를 제가 간과한 거죠.


그렇지만 원래 사람은 고쳐쓰기 힘들다는 거, 아시죠? 그 이후에도 현재를 오롯이 즐기지 못하는 성격은 제 인생 전반에 소금처럼 흩뿌려져 생각지 못할 때 알알이 씹히곤 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요즘에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말을 조금 유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일까 싶어졌어요. 아끼면 똥 된다는 말. 주저 없이 직관적인 저 문장이 도저히 당장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긴 어렵지만요.


그래도 요즘에는 그래요. 새로운 식재료를 사 오면 천년만년 찬장에만 넣어두지 않고 우선 뜯어서 먹어보고, 손님상에도 내어 함께 의견을 나눠봅니다. 뭔가를 다 먹었을 때 아쉬워하지 않고 이 한 끼가 행복했다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하고요. 놀러 간 곳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면 돌아올 때의 섭섭함은 잊어버리고 우선 즐겨봅니다. 여유로운 주말 오후는 (특히나 일요일 오후에는) 월요일의 출근은 굳이 끌어와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했던 순간은 핸드폰 메모장이든 일기장이든 꾹꾹 눌러 담아서 스스로 작위적이라고 느낄 만큼 계속 그 순간을 곱씹기도 합니다.


사실 저한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만, 겉으로라도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고이 아껴서 버려지는 마음보다 당장 쓰여지는 마음의 크기가 커지는 때가 오겠죠.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dampasta.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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