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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녀석, '막둥이'

까칠한 가족

by 까칠한 펜촉

백수(白手)의 시간 동안, 막내아들의 방을 서재 삼아 쓰고 있다.


책 보고, 글 쓰다가 이따금씩 아들 방의 곳곳을 유심히 살펴본다. 이런 글도 있다. 정말 귀여운 녀석이다.


바른생활이 바른 몸과 마음을 만든다.


우리 가족에겐 숨 쉬는 것만 봐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막둥이. 매년 매시간 이 녀석이 빨리 크지 않기를 바라지만 녀석은 이제 6학년 형님이 된다.


이 녀석이 태어날 즈음, 집을 샀고 대학원을 갔다. 대학원을 다니던 2년 동안은 낮, 밤, 주말 없이 학업과 업무로 쉴 틈이 없었다. 정말 그랬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공부도 재밌었고, 일도 원하는 데로, 계획하는 데로 다 잘 풀릴 때였다. 주말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집에서는 과제에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막내 녀석과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껌 딱지처럼 옆에 끼고돌던 큰 딸과는 달랐다.


그때, 그 시기에 아빠와 아들의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아 선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유독 심한 탓인지 나와 있을 때면 늘 짜증을 냈고, 한 번도 내 품 안으로 푹 안기지 않았다. 친밀한 부자(父子) 관계를 뽐내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늘 상 아빠 품에서 놀기 좋아했던 딸아이를 키웠던 탓인지, 이 ‘까칠한’ 녀석에게 섭섭할 때가 많았다.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오면 딸아이는 “아빠~~~”하고는 이내 내 품 안에 안겼다. 이 막둥이 아들 녀석은 본체만체하고는 TV로 시선을 돌린다. “진아, 아빠 왔는데 인사 안 해?”라고 엄마가 얘기하면 “어!”하고는 끝이다. 그러면서, 지 엄마하고 누나한테는 얼마나 상냥하고 살가운지…


초등학교 4학년부터였을까? 누나가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가면서부터 녀석이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주말에는 종합운동장에 가서 ‘농구, 축구, 캐치볼, 달리기 등’으로 함께 땀을 흘렸고, ‘월광보합’ 게임기로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 보글보글, 메탈 슬러그 등’의 게임을 즐겼다. 또 기숙사 생활로 주말에만 학원을 갈 수 있는 딸아이의 셔틀을 하며 학원 근처 카페에서 아들과 책도 보고 좋아하는 음료도 함께 했다.


늘 상 아이들과 다닐 때는 손을 잡고 다닌다. 딸아이는 지가 먼저 손을 잡았지만, 막내 녀석을 어떤 보상 같은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내 손을 잘 잡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녀석이 내 손을 잡았다.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작년에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아들의 ‘기아 타이거즈 팬 만들기’ 목표가 성공했다. 아버지부터 내 아들까지 3대가 기아 타이거즈 팬이 된 거다. 기실, 성공 정도가 아니라 이 녀석은 이제 ‘야친자(야구에 미친 자)’가 됐다. 뭐든 한 가지에 빠지만 집요하게 몰입하는 녀석인데, 마침, 2024년 기아 타이거즈가 한국 시리즈를 제패할 때까지 계속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나에게 슈퍼스타 이종범과 선동열이 있듯이 ‘김도영, 곽도규’라는 슈퍼스타들이 아이의 야구사랑을 더 하게 했다.




우리는 이제 꽤 좋은 부자지간(父子之間)이 되었다.


가끔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게 되면 유튜브로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 결과에 나오는 아빠의 사진과 이름을 보여주면 꽤 자랑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가끔은 아빠의 꿈에 대한 얘기도 해줬다.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정신적 치유를 주는 사람이 될 거란 것과 3년 안에 유퀴즈에 나와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될 거란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예전 회사에 입사하면서 받았던 금명함을 팔까 하고 아내와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그 명함은 나중에 아빠가 더 유명해지면 아주 비싼 가격으로 팔 거니까 지금 팔면 안 돼!”라고 하더라.


사랑하는 가족에게 기대가 되고 희망이 된다는 것은 참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사실, 아이와 내 관계가 급속히 좋아진 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 만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아내에게 지병이 생겼다.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이다. 호흡기 계통의 이슈인데 때때로 호흡이 어려워져 일상생활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아이는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쇼핑을 하거나 배달 음식 시키는 것을 거부했다. 엄마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유튜브에서 냉동인간에 대해서 봤던 모양이다. 그리고,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들을 냉동인간화 하여 먼 미래에 깨우고 병을 고친다는 내용인데,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있었나 보다. 그때부터 아이는 우리 가족 모두 냉동인간이 되어야 한다면서 절약하고 아껴서 냉동인간이 될 준비를 하자는 얘기를 자주 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대견하면서도 짠한 아이의 행동이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엄마의 병은 자주 웃고, 행복하면 나아지는 거라고 얘기했다.


아마 이 대화가 중대한 변환점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교하면서부터 짜증 내고, 밥 먹으면서 짜증 내고, 씻으면서 짜증 내고, 어디 놀라가자고 해도 짜증 내고, 사진 한 번 찍자고 하면 울어버리는 그 까칠했던 녀석은 엄마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어떤 중대한 다짐이나 약속을 한 것처럼 보인다.




까칠하고 까탈스러웠던 것은 아이의 성격 탓일 수도 있다. 아이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한 톨의 흠결도 없이 고지식한 성격이다. ‘아이들은 다 그렇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건 우리 아이를 겪어본 적이 없어서 하는 소리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정해진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걸을 때는 항상 우측으로 다녀야 하고 자동차를 타고 갈 경우 차선을 바꾸려면 반드시 깜빡이를 먼저 넣은 후에 주행해야 한다. 차에서 음악을 틀고 있을 때는 창문을 내려서는 안 되며 엘리베이터나 공공장소에서 대화는 금물이다. 한 번은 백화점에서 이 녀석 이름을 크게 불렀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짜증 짜증 개 짜증을 부렸다. 시험을 볼 때는 1~2개는 틀려도 되지만 3개는 안된다. 3개 이상 틀리면 모범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옷을 각을 잡고 개어놓고 방정리를 해야 한다. 학급 회장은 경기도 교육청이 준 명예이기 때문에 학급 친구들을 잘 돌봐야 하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고 하여 쓰레기를 버리거나 새치기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지식하고 까칠한 성격도 냉동인간 사건 이후로 점점 순하게 변한 듯하다.


아이는 이제 늘 밝고 명랑하며 잘 웃는다. 같이 외출을 하면 먼저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밤 산책 길에서는 달을 보며 아름답다고 하고, 공기 냄새가 너무 환상적이며 이런 모든 느낌이 로맨틱하다는 얘길 한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너무 귀엽고, 세상에서 가장 이쁘다.”는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며 엄마한테 안긴다.


한 때는 너무도 까칠한 이 녀석의 성격 때문에 아내와 걱정을 하며, 상담을 받아볼 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물론, 아이의 성격이 180도 바뀐 것은 아니다. 어쩌면 어떤 이유로 그 까칠함을 억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회사에 있을 때였다.


평소에 근무 시간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어떤 친구를 때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살벌한 위협을 하고는 자기 연필을 죄다 부러뜨렸다는 것이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아이는 자기가 했던 대부분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고 다만, 친구와 싸우게 된 이유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학급 친구가 ‘기아 타이거즈를 욕했고, 김도영 선수를 욕했다는 이유다.’


또래보다 작고 빼빼 말랐으며 하얀 얼굴에 너무도 귀엽게 생긴 우리 아이가 한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건, 집에서도 화가 나면 바로 짜증 내지 않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연필을 두 동강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그렇다. 아이는 완전히 바뀐 것이 아니고 엄마의 건강과 가족을 위해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었다.


아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아이는 오늘도 정해진 생활계획표에 맞춰 일찍 일어나서 놀이시간과 공부시간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다.


나중에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아빠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면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한 것과 우리 두 아이를 낳아 기른 것이다. 때론 고되고 힘들 긴 하다. 양육하고, 생계를 책임진다는 무게는 결코 가벼이 여겨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가족은 축복이다. 모든 원인과 결과이며 삶의 우선순위이고 좋은, 올바른, 정의로운, 훌륭한 무언가 되기 위한 가장 큰 동기이다.


까칠한 녀석이 엄마와 가족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보며 나 역시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나날이 더 좋은, 올바른, 정의로운, 훌륭한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 까칠한 펜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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