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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하지만, 까칠하게

까칠한 펜촉

by 까칠한 펜촉

아주 예전에

H그룹의 임원께 신임 팀장 인사를 드리러 간 적이 있다.


인사 말씀이 아주 예술이었다.


전략기획이란 건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회사 돈 수십, 수백 억 원과 회사 인력 수십, 수백 명을 써가며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이지! 그게 내 돈이면 할 수 있겠냐 이거야. 그러니까 실패할 수도 있는 일에 회사가 돈과 자원을 투자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그게 당신의 역할과 책임인 거야!


역할까지는 좋은데, 책임을 지라니 뭐 무서워서 하겠나 싶었다. (책임을 져봐야 퇴사하면 그만인데.)


내 생각, 내 판단, 내 의사결정

상급자의 생각, 상급자의 판단, 상급자의 의사결정

이해관계자의 생각, 이해관계자의 판단, 이해관계자의 의사결정


이렇게 3가지를 모아 버무리면 중장기 성장전략, 중장기 사업전략, 신성장동력 이런 게 만들어지고 이게 또 생각, 판단,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이해관계자들까지의 공감대를 얻고 나면 비롯소 실행의 여건이 만들어진다.


그런 후에 각 전략들은 아이템으로 구체화되고, 각 아이템은 다시 선선행, 선행, 연구개발, 상품화(양산) 등으로 분류되어 자원 배분의 우선권을 부여받는다.


또 그 후에 담당부서, 담당자가 지정(Deployment)되어 그들이 실제 상위기획부터 실행계획까지 준비가 되어서야 나, 상급자, 이해관계자가 결정했던 어떤 일이 어떤 기대되는 결과로 이어질지 시각화된다. 매출, 고객, 프로세스 개선 뭐 이런 것이다.


또 그것을 나와 상급자와 이해관계자들이 상호 공감하는지 여부를 각자 서명을 통해서 확정한 후에야 드디어 실행된다. 그런 이유로 실행의 여건이 만들어진 최초의 순간부터 실행이 확정되는 시간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였다.



그때는 어땠냐고?


그날그날 계획하고 실행하길 요구받는다.

그날그날 계획하고 실행하길 바란다.

그날그날 계획하고 실행하라고 지시한다.


나름 여러 시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몇 시간 생각해 봤다.

지금 방금 들었다.


이런 현상이,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냐고?


1. 지금 방금 생각난 것을 얘기한다.

이해했냐고 묻는다.

언제까지 할 수 있냐고 묻는다.


2. 지금 방금 생각난 것을 얘기한다.

이해했냐고 묻는다.

언제까지 할 수 있냐고 묻는다.


3. 지금 방금 생각난 것을 얘기한다.

이해했냐고 묻는다.

언제까지 할 수 있냐고 묻는다.


불편한 거 안다.

그런데, 불안해서 그런다. 불안한 것보다는 내가 까칠한 게 낫겠다 싶어서 그런다.


미안하다. 불편하게 해서... 까칠하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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