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쓰기 벗하기
40대에 접어들면서 언젠가는 내 글을 쓰고, 내 이야기로 채워진 책을 세상에 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획 업무를 오래 했기에 어떤 새로운 무엇을 창작하는 방식은 방법과 프로세스에서 매우 유사한 접점이 많다고 생각했고, 나는 때때로 깊이 생각하여 사유할 줄 아는 특성이 있기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의 한 방향이라 생각했다. 한두 걸음 뒤에서 나를 바라본(혹은 평가하던) 분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나에 대한 관점(혹은 평가)'도 글 쓰고, 말하고, 어필하는 것에 특별한 역량이 있다는 의견들이 적잖았다.
블로그를 했었다.
내 얘기를 쓰려니 온통 안에 있었던 욕설과 걱정, 불만, 회한, 후회, 불안 등이 배설물처럼 남들에게 보일 수 없이 흉한 모습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내 얘기를 쓰려니 온통 안에 있었던 나에 대한 연민과 콤플렉스, 열등감, 자격지심 등이 토악질처럼 남들에게 들키기 싫었던 내면의 비루함을 가장 비싼 옷으로 덮어놓은 듯 역겹게 느껴졌다.
적잖게 읽었다고 생각했고, 남들의 노력과 열망은 무시한 채 글쓴이의 외적 요소만으로 이건 별로고, 저건 엉망이다라고 폄하했던 주옥같은 책의 구절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는 것을 느끼며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은 버짐처럼 마음에 내려앉았고 널따란 광장에 홀로 발가벗겨졌으나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할 만큼 존재감이 없는 미물과 나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너무나 훌륭한 책이 많았다.
20대에 재기 발랄한 글재주를 갖고 있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문장에서 그의 향기와 모습이 그려졌다.
존경하는 유시민 작가님의 글에서 글 쓰는 이의 마음 자세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1920년에서 1930년 즈음에 쓰인 자기 계발서와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들의 지식의 넓고 깊음에 한 없이 초라해졌다.
글 쓰는 이가 되겠다는 그 다짐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회사 일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핑계로 잠시 뒤덮어 놨지만 마음의 깊은 곳에서, 그리고 찬란하고 아름다운 책과 그 안의 문장들이 비록 비천하고 남루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나의 글들이 언젠가는 좀 더 번듯하고 당당해질 것이라고 나를 다시 이끌어 낸다.
책이 있고, 문장이 있고, 어휘가 있고, 그 속에 세계가 있다.
나의 세계도 그 안에 있어
언젠가 나의 어휘로 나의 문장으로 나의 책으로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하게 되리.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