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노트
제안서의 목적은 누군가에게 내 의도를 설득하기 위함이다.
제안서는 '기획서, 보고서, 제안서 등' 갖가지 타이틀로 포장되고 작성자의 지식, 경험, 스킬에 따라 천차만별의 기능과 성능, 품질을 갖는다.
어떤 이는 문서의 화려한 디자인과 전문 용어로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어떤 이는 산업, 시장, 경쟁자 등 외부환경 분석을 통해 겉보기에는 유려한 인사이트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제안서가 단순한 자료로만 머무는 이유는 진정성(혹은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 진정성은 필수다.
진정성은 설득의 대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간혹, 표준 제안서라는 것을 본다.
표준 제안서는 대부분 겉보기 좋은 디자인에 (어려운) 전문 용어가 빼곡히 들어가고 내가(우리가) 누구인지, 뭘 잘하는지 내 칭찬 일색으로 채워있고 내가 대상을 설득하려는 명분이 불분명하다. 이는 제안서라기보다는 카탈로그나 리플릿으로 부르는 게 맞다.
나는 표준 제안서라는 문서류를 매우 싫어하고 혹은 경멸한다.
대상자의 상황(Situation & Position), 상태(Condition), 어려움(Pain Point), 문제(Problem)는 어느 하나도 같을 수가 없다. 이런 복잡다단한 대상자의 입장에 우리는 어떤 표준화된 제안을 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그 설득의 대상이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한 어려움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때로는 함께 아파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선을 내게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문에 한 편의 제안서를 쓰는 것은 나를 모르는 어떤 이에게 다정하고, 애정 넘치는 문구로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쓰는 것과 같아야 한다.
우리는 회사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남들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한다.
비단, 형식을 갖춘 제안서가 아니더라도 말과 제스처 혹은 차담과 술자리, 골프 라운딩을 통해서 대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말씨로 표정으로 그를 위해 헌신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낀 대상자가 설득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의도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최근 며칠 동안 어떤 제안서를 작성하며 한 편으로 내가 2인칭의 시점으로 스스로에게 어떤 제안서를 쓸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그리고, 나를 납득시키고 이해시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나를 위한 제안은 어떤 것일지, 그것이 내 삶에 어떤 가치를 의도하고 목적할 수 있는지 생각이 이어졌다.
우리는 자아를 갖추고 성인으로서 가치관과 독립된 세계관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그것을 스스로에게 물으면 선 듯 마땅한 대답을 찾기에 어려울 때가 있다. 그만큼 자아는 불안정하고 때론 여리다. 때문에 주변에 좋은 조언자, 멘토가 필요하다. 물론, 좋은 책을 통해 뜻밖에 성찰과 가르침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에는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 없지 않다. 그래서,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다정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80억 명이 사는 이 지구상에.
나보다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며 아끼고 조건 없이 애정하는 이가 또 있을까?
그래서, 가끔은 내게서 내게로 인생의 제안서, 다정하고 애정 있는 편지가 필요하다.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나를 위한 제안서, 다정한 손 편지를 오늘 한 편 써 보려 한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