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른 세월호의 기억, 팽목기억관의 10년

#027. [진도] 세월호팽목기억관

by Muse u mad

2025년 11월 19일 20시경, 전남 신안군 장산도 남측 해역에서 여객선이 암초에 좌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에서 목포로 향하던 퀸제누비아 2호로, 당시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해 267명이 탑승해 있었다. 해경과 민간 선박의 구조 활동을 통해 탑승자 전원이 약 3시간 만에 구조됐고, 일부 부상자는 발생했으나 사망이나 실종자는 없었다. 해당 사고는 야간 항해 중 협수로에서 발생했고, 항해사의 변침 시점 판단 문제와 휴대전화 사용 등 인적 요인이 복합되어 좌초에 이른 것이었다.

11년 전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곳이다. 두 사고 모두 다수 승객이 탑승한 여객선의 연안 항해 중 발생했고, 암초 인근 해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한 사건에서는 전원 구조, 다른 사건에서는 304명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에 더 큰 안타까움이 남았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2024년에 다녀왔던 세월호팽목기억관의 기억을 여기에 남겨본다.



한 줄 요약

✔️ 전원 구조된 최근의 해상사고를 계기로 11년 전 세월호를 떠올리며 세월호팽목기억관과 여러 추모공간의 현재를 기록해 본다.


박물관 개요

✔️ 명칭: 세월호팽목기억관

✔️ 홈페이지: https://416sewolfamily.org/memory/2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홈페이지)

✔️ 주소: https://maps.app.goo.gl/6bK2wkVw8Mwd664x9



다시 떠올려보는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원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는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항으로 향했다. 사고 당시 이 선박에는 승객 443명, 승무원 33명 등 총 476명이 탑승해 있었다. 승객 중 상당수는 수학여행 중이던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교사였다. 사고가 발생한 위치는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북쪽 약 2.7km 해역이다.

화면 캡처 2025-11-28 105732.png 세월호 침몰 지점 (출처: Google Maps 화면 캡처)


세월호 전복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첫째, 사고 당시 세월호는 법적으로 허용된 화물 적재량보다 훨씬 많은 화물을 싣고 있었다. 조사 결과, 실제 적재 중량은 허용치를 약 두 배 가까이 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부 화물은 고정 상태가 충분하지 않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기울기나 급격한 변침이 발생할 경우 화물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 조건이었다. 둘째, 일본에서 중고 선박을 매입하면서 상부 객실을 증설하는 구조 변경을 거쳤는데, 이로 인해 무게중심이 위로 이동했고 작은 외력이나 조타 조작으로도 크게 기울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있었다. 셋째, 사고 직전 우현 방향으로 변침을 수행하였는데, 통상적인 각도와 속도보다 급격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즉 항로 변경 시점이 늦어 급하게 변침하였는데, 과적과 상방으로 이동한 무게중심까지 겹쳐 선체가 급격하게 기울게 된 것이다. 더욱이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은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과적과 안전기준 위반이 있었음에도 정부 당국의 규제까지 미약했던 구조적 안전관리의 실패였다.

자연재해와 같이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피한 사유로도 선박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처럼 인명 구조까지 완벽하게 실패했던 사례는 드물기 때문에 그 이유도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침몰 초기, 선박에서는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에 머물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선체가 급격하게 기울면서 대부분의 승객들은 조기에 갑판이나 외부로 이동할 기회를 잃었고, 외부로의 이동이 가까운 일부 승객들만이 탈출해 구조될 수 있었다. 또한 선장과 승무원들은 승객이 모두 대피하기도 전에 먼저 해경 구조정으로 이동했다. 충분한 대피 안내 조치도 하지 않는 등 승객의 생명보호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셈이다. 해양경찰은 바로 경비정과 구조헬기 등을 보냈으나, 상부의 상황 파악과 지시 대기에만 시간을 허비해 오히려 민간 어선이 먼저 접근해 상당수 승객을 구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치안과 단속 중심의 조직이었던 해경에 재난 구조 역량은 축적되지도 훈련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사고 직후 '탑승자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나오면서 신속한 구조자원의 투입, 사고 심각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 국민과 유가족에 대한 정보 전달 모두에 혼란을 가져왔다.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충분히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참사를 촉발한 대형 인재(人災)였다.

결국 476명 중 172명만 구조되었고, 304명은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승객 중 대부분이 단원고 학생과 교사였는데, 학생 325명 중 250명, 교사 14명 중 11명이 사망하여 안타까움을 더했다. 승무원은 총 33명이 탑승하였고, 20명 이상이 생존하였다.




팽목항(현 진도항)에 남은 기억

팽목항은 당시 해상에서 수습된 희생자 시신을 옮겨 신원 확인과 안치 절차를 거치던 거점 항구였다. 미수습자 가족과 희생자 유가족이 구조와 수습을 기다리며 체류한 장소였고,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연대활동을 펼친 공간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팽목항은 컨테이너 구조물을 활용한 가족 대기실, 임시 식당, 상담실, 분향소 등이 설치되었고,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사건 현장을 기억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분향공간에 희생자 사진, 유가족과 시민이 남긴 메시지, 리본, 각종 현수막이 쌓이면서 처음에는 팽목분향소로 불렸다. 더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 당시와 이후의 각종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기능했고, 팽목기억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현재 공식 명칭은 세월호팽목기억관이다.

10년이 지나 방문한 이곳에는 여전히 팽목기억관이 자리하고 있었고, 2022년 10월 29일 발생했던 또 한 번의 인재인 이태원 참사까지 연대하고 있었다. 여전히 컨테이너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다는 것은 기억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함일 것이라 받아들였다. 세월호팽목기억관의 내외부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 분향공간,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고자 방문한 사람들의 메시지가 담긴 노란색 리본이 가득했다.

KakaoTalk_20251128_075345570.jpg 진도항(구 팽목항)에 위치한 세월호팽목기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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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세월호팽목기억관 외부에 기록된 희생자 이름 / (우) 희생자의 사진이 있는 내부의 추모 공간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담은 수많은 기념물과 리본 메시지는 팽목항 앞 잔교에도 가득하다. 길 중간 즈음에는 세월호 참사의 상징이 된 노란 리본 기념비가 있고, 잔교 끝에는 추모탑이 서 있다. 희생자들의 명단패널도 세월호가 침몰했던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든 희생자가 안타깝지만 어린 나이에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잠든 단원고 학생들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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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잔교에 설치된 두 가지 구조물


현재 전남 목포시에는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가칭) 건립을 준비 중이다. 2026년 착공해 2029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준공이 되면 현재의 컨테이너 팽목기억관은 철거되고, 그 안에 있는 기록물 등의 기억 유산은 다른 곳으로 이전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현장에서 추모의 의미를 남기기 위해 기림비, 조형물 등은 남겨두고, 소규모의 기억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참고로, 현재 팽목항의 공식 명칭은 진도항이다. 사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에도 공식적으로는 진도항이었다. 사고 발생 1년 전인 2013년 항만 개발 계획에 따라 항구의 지명도를 높이고 향후 다기능 거점항으로 육성하고자 명칭을 변경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고 당시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진도항보다는 팽목항이 익숙했고, 모든 언론에서도 팽목항이라 칭했기 때문에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팽목항으로 남아 있다.




세월호 기억공간들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많은 곳에서 희생자 추모관이 설립되어 운영 중이다. 세월호가 출발했던 인천광역시에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세월호의 도착지였던 제주시에는 '세월호 제주 기억관'이 운영 중이고, 가장 큰 희생을 치렀던 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안산시에는 '4.16 기억 전시관'이 있고, 단원고등학교에는 '단원고 4.16 기억교실'이 있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https://maps.app.goo.gl/iKG49AA5nHMEtsZLA


세월호 제주 기억관 https://maps.app.goo.gl/j68xMeQuAp9B8q426


4.16 기억 전시관 https://maps.app.goo.gl/u2kdz93Rmv4X9ja18


단원고 4.16 기억교실 https://maps.app.goo.gl/Vj8b8WP9rX8xmWio9




Epilogue

가장 크게 알려진 해양 사고는 타이타닉 침몰일 것이다. 1912년 영국 사우스햄프턴(Southampton)을 떠나 미국 뉴욕(New York)으로 가던 이 선박은 빙산에 충돌하면서 침몰하였다. 총 2,224명의 탑승객 중 약 1,500여 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역사상 가장 큰 해양 사고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타이타닉 침몰 사고를 기억하는 박물관도 존재한다. 타이타닉이 출발한 잉글랜드 사우스햄프턴에는 SeaCity Museum이 있고, 타이타닉을 건조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Belfast)에는 Titanic Belfast 박물관이 있다. 당시 벨파스트는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점차 조선산업이 쇠퇴하면서 조선소 부지는 방치되다시피 하였다. 북아일랜드는 이 일대를 산업유산과 역사 보존, 관광을 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타이타닉 박물관을 건립하게 되었다. 박물관이 개관한 2012년은 타이타닉의 첫 출항 100주년이었다.


Titanic Belfast https://maps.app.goo.gl/aESBi7c3qVGdUqUx8


SeaCity Museum https://maps.app.goo.gl/bR6HwPvdEoMZvwH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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