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일본] 유자와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설국관
스키장과 소설 <설국>의 배경지로 유명한 유자와(Yuzawa)
진짜 '설국'에서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
<유자와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설국관>
겨울에 도쿄에서 조에쓰 신칸센을 타고 혼슈 서부 니가타현(新潟県) 방면으로 80분 남짓을 달리면 도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 <설국(雪国)>의 배경이 된 도시 유자와마치(湯沢町)다.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도쿄와 달리, 에치고산맥(越後山脈)을 통과하는 터널을 지나면 온 세상이 하얗게 바뀐다. 소설 <설국>의 가장 유명한 문장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夜の底が白くな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유자와마치의 위도는 우리나라 울진군, 영덕군과 비슷하다. 위도도 높지 않은데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지, 얼마나 눈이 많이 오길래 <설국>이란 소설의 배경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더욱이 이 지역은 에도 시대 역참마을로써 기능했다고 하는데, 이런 지역이 어떻게 역참의 기능을 했는지도 찾아보고 싶었다.
1월 초에 3일간 머물렀는데, 거의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눈이 내렸다.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은 이런 날씨에 현지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운전할지였다. 기차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그 의문은 바로 풀렸다. 모든 도로에 살수 제설 장치가 있어 내리는 눈이 쌓이거나 얼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었다. 현지에서는 이를 눈을 사라지게 한다는 의미로 '소설(消雪) 파이프'라 칭한다. 살수 장치가 없는 길에서는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장화가 없다면 생활하기 힘든 곳이었다. 온천으로도 유명한 곳이기에 쉼을 위해 방문한 도시였지만, 놀라운 설국의 풍경과 그들의 삶이 궁금해 유자와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설국관(湯沢町 歴史民俗資料館 雪国館)에 들렀던 기록을 남겨본다.
✔️ 유자와마치의 생활사와 전통 도구들부터 역참마을로써의 기능, 현대의 독특한 제설책까지, 설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살펴보다.
✔️ 명칭: 유자와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설국관 (湯沢町 歴史民俗資料館 雪国館)
✔️ 홈페이지: https://www.e-yuzawa.gr.jp/yukigunikan/
✔️ 지역: 일본 니가타현 미나미우오누마군 유자와마치
✔️ 위치: https://maps.app.goo.gl/j4Tq3G5mN3K7aZyg9
도대체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길래 설국이라 불리는가? 크고 작은 모든 도시의 강설량을 비교한 데이터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전 세계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들 중 연평균 강설량이 높은 순위에 일본 도시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 세계 1~3위는 아오모리(青森) 792cm, 삿포로(札幌) 485cm, 도야마(富山) 363cm로 일본 북부 또는 서부 지역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자와마치는 인구가 약 8천 명에 불과해 위 통계에서 제외되어 있을 뿐, 일본 기상청의 통계를 찾아보면 연평균 강설량이 무려 10m에 달한다. 202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시즌에는 총 강설량이 1,338cm를 기록할 만큼 전 세계 최상위권 도시들을 압도한다. 최심적설량(눈이 내리기 시작해 그칠 때까지 쌓인 눈의 두께가 가장 두꺼웠을 때의 값) 기준으로도 2021년 초에 약 4m를 기록한 적이 있을 만큼 설국을 넘어 폭설 왕국이라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지역은 위도가 높지 않다. 겨울이 되어도 눈을 몇 번 보기 힘든 경상북도 정도의 위치다. 우리나라와 그리 멀지도 않은데, 이 지역에는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는 지리적 요인과 기상 현상이 절묘하게 결합한 과학적 이유가 있다. 겨울철이 되면 시베리아에서 영하의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오는데, 상대적으로 따뜻한 동해 바다 위를 지나면서 이 기단은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공급받는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대류현상이 일어나며 거대한 눈구름 덩어리가 형성되는데, 눈구름은 북서풍을 타고 더 내려오다가 니가타현 내륙의 에치고산맥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부딪힌 눈구름은 산을 타고 오르며 급격히 냉각되고, 이로 인해 수증기가 응결되어 눈구름은 더욱 강력해진다. 이렇게 산맥에 막힌 눈구름은 일본 동부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 지역에 폭설을 쏟아붓는다. 유자와마치를 비롯한 니가타현 주변이 세계 최고 수준의 다설지역이 된 이유이다.
자연환경에 따라 인간은 적응하기 마련이라 이 지역의 사람들은 다설환경에 적합한 생활방식을 만들어왔다. 우리에게 눈은 계절적 불편 요소 정도라면, 이들에게 눈은 일상생활 전반의 전제 조건이 된다. 그리고 설국관은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공간이었다.
1. 쇼세츠(消雪) 파이프
유자와마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서두에서도 언급했던 상설 살수장치이다. 제설차 중심의 일시적 대응이 아니라 눈이 쌓이지 않도록 녹이는 방식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삿포로도 마찬가지로 눈이 많이 오지만 기온이 낮아 살수된 물이 얼 수 있어 살수장치 대신 로드 히팅(Road Heating) 방식을 택한다. 반면 눈이 많이 오지만 기온은 낮지 않은 유자와마치는 살수된 물이 금방 눈을 녹이기 때문에 살수장치가 적합한 것이다. 겨울철 유자와마치의 모든 도로가 젖어 있는 이유이자, 보행자들이 반드시 장화를 신어야 하는 이유이다.
2. 2층 출입구와 개폐 가능한 눈막이
이 지역에서는 눈이 집 높이만큼 쌓이는 경우가 흔해 1층 입구가 막히는 일이 빈번하다. 이에 대응해 이 지역의 가옥은 2층에 출입문을 만들어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폭설이 내리면 2층으로 출입하고, 지하처럼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함이다. 그래서 1층에는 주로 차고와 창고를 두고, 눈이 쌓여도 견딜 수 있도록 단단한 콘크리트로 짓는다. 대부분 목조 주택인 다른 일본 지역과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1층 창문 바깥쪽에는 눈에 유리창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눈막이가 설치되어 있으며, 겨울철이 아닌 계절에는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붕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선 형태의 지붕을 두었음도 물론 특성 중 하나이다.
3. 눈을 피할 수 있는 보행도로, 가기(雁木)
가기는 도로변 가옥의 지붕을 도로 쪽으로 길게 내어 보행자가 눈을 맞지 않고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아케이드이다. 동남아시아 등 더운 지방에서도 뜨거운 햇볕이나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 위해 파이브 풋 웨이(Five-foot way) 보행로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목적은 다르지만 유사한 형태를 이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4. 눈 창고, 유키무로(雪室)
이 지역에서는 과거부터 눈을 일종의 천연 냉장고로 활용해 왔다. 대량의 눈을 창고에 보관하여 연중 낮은 온도와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인데, 눈 속의 온도는 항상 0~5도 사이, 습도는 90% 이상의 고습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식품의 건조를 막고 신선도를 높인다. 또한 저온 숙성을 통해 전분이 당분으로 변하면서 채소는 훨씬 달아지고, 쌀은 수분을 머금어 갓 수확한 것 같은 찰기를 유지한다. 또한 사케는 알코올의 거친 맛 대신 부드러운 풍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우오누마노사토(魚沼の里) 양조장은 전통적인 토굴 형태를 넘어 수천 톤의 눈을 저장하는 거대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사케를 숙성시켜 판매하고 있다. 눈을 치워야 할 짐이 아닌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 과거 설국에서의 삶
이 지역처럼 눈이 많이 오는 곳은 일반적인 신발이나 이동수단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짚으로 엮은 장화는 눈이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보온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했으며, 칸지키(かんじき)는 몸무게를 분산시켜 눈 위에서도 걸을 수 있도록 도왔다. 칸지키는 현대의 스노슈즈(Snowshoes)의 역할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방한은 물론 눈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머리부터 뒤집어쓸 수 있는 짚 덮개인 보치(ぼっち)가 있었고, 이동과 운반을 위해서는 썰매 키카이조리(キカイゾリ)를 활용하였다.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이 지역의 집에는 방 한가운데에 이로리(いろり)라 칭하는 화로가 있었다. 집안 전체의 온도를 유지할 뿐 아니라 습기를 제거하여 목조 주택이 부식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또한 산간 지역인 유자와마치에서는 겨울철 단백질 섭취를 곰 사냥을 하였다. 설국관은 이 지역의 곰 사냥 문화도 소개하고 있었는데, 주로 동굴에서 동면 중인 곰을 찾아 사냥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냥한 고기를 운반하기 위해 야마소리(山そり)라는 통나무로 만든 썰매를 이용하였다.
에도시대에는 막부가 통치권을 강화하고 전국을 연결하기 위해 주요 간선 도로망을 정비하였는데, 이를 가도라 칭한다. 다이묘들이 에도를 정기적으로 왕래해야 했기 때문에 관리들이 이동할 길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에도(도쿄)와 지역을 연결하는 길에 서신과 공납품이 오갔다. 그래서 이 길에 말과 인력을 교체하고 여행객이 숙박할 수 있는 역참마을이 필요했다. 즉 가도는 국가적 차원의 운송망이었다. 이후에는 일반 여행객들도 다니는 길로 기능이 확장되면서 가도에 있는 멋진 풍경을 그려 전파하는 우키요에 화가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에도에서 니가타 방면으로 향하는 길을 통칭하여 미쿠니 가이도(三国街道)라 부르는데, 가도에 위치하고 있던 당시 에치고(越後, 현 니가타현), 고즈케(上野, 현 군마현), 시나노(信濃, 현 나가노현) 세 번(藩)의 경계가 미쿠니 고개 정상에서 만난다는 데서 유래했다.
의아했던 점은 유자와마치처럼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 왜 역참마을로 기능했을지였다. 답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험난했기 때문이었다. 간토 평야에서 에치고(니가타)로 넘어오는 가장 험한 고개인 미쿠니 고개를 넘으면, 험난함 때문에 반드시 정비와 쉼이 필요했는데 가장 적합한 지역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또한 폭설이 내리면 어쩔 수 없이 눈이 잦아들 때까지 머물러야 했고, 유자와마치는 온천이 많아 피로를 풀기에도 적합하였다. 숙박시설과 식당이 자연스럽게 발달하면서 역참마을로써 기능하게 된 이유이다.
유자와마치에서 지역철도로 약 20분이면 시오자와(塩沢)라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은 평지가 많아 물자가 집결하는 역참마을로써의 기능뿐 아니라 상업 거점의 역할도 했다. 물류가 모였던 만큼 유자와마치보다 더 큰 규모의 역참이었는데, 그만큼 관리들은 물론, 수많은 상인과 여행객이 몰려 대규모 숙박시설이 발달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설국의 경제 수도와 같은 역할을 했던 이 지역과 가도 문화를 기억하기 위해 과거 역참마을의 풍경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시오자와 역참 보쿠시 거리(塩沢宿 牧之通り)를 조성하였다. 에도시대 후기 상인이자 문필가인 스즈키 보쿠시(鈴木牧之)의 이름에서 딴 거리이다. 앞서 언급했던 눈을 피하기 위해 지붕을 길게 내어 보행로를 만든 가기(雁木) 구조를 도로 전체에 복원하여 독특한 가옥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설국인 만큼 시오자와 주민들은 겨울철 남는 시간에 부업으로 실을 뽑고 천을 짜는 직물업을 부업으로 하였는데, 최소 140일 간은 눈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생활 노동이었다. 모시를 만드는 독특한 기법인 에치고조후(越後上布)를 개발하였는데, 이는 에치고 지역에서 만든 최상급 천이라는 의미로, 다설지역의 특성을 활용한 기법이다.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실을 뽑고, 손으로 문양을 맞추며, 발로 밟아 찌는 1,200여 년 전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천을 한겨울 눈밭에 두어 눈이 녹으면서 발생하는 오존의 산화작용으로 하얗고 깨끗하게 표백하는 유키자라시(雪曝し) 기법은 이 지역에서만 가능한 방법이었다.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연친화적이고 창의적인 기술로 인정받아 유네스코는 에치고조후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올린다. 에치고조후 공법을 이용해 제작한 비단 시오자와 쓰무기(塩沢紬)도 유명한데, 시오자와에는 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오자와 쓰무기 직물 박물관도 있다.
유자와는 니가타현 소속의 유자와마치(湯沢町)가 있고, 아키타현 소속의 유자와시(湯沢市)가 있다. 우리나라 행정단위로 보면 읍(町)과 시(市)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된다. 하지만 지역명이 같다 보니 일본 내에서도 혼동을 피하기 위해 유자와마치는 옛 지명을 붙여 에치고유지와(越後湯沢)라고도 부른다. 기차역명도 에치고유자와인 이유이다. 지역명에서 알 수 있듯이 유자와마치는 온천이 솟아나는 곳이다. 설국에서 스키를 즐기고 온천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다. 추운 겨울 노천탕에는 몸을 담그고, 머리로는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