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 가는 것뿐이야
이혼을 하고 다시 부모님 집에 들어갔을 때, 부모님은 나에게 전혀 불편함을 주시지 않았지만 나 자신은 뭔가 '빽도 (윷놀이에서 쓰는 그 빽도)'한 기분에 힘이 들었다. 결혼 전에 쓰던 방에서 변한 거 하나 없이 지내다 보니, 내가 결혼을 하긴 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7개월 정도의 결혼 생활은 삶의 길이로 보면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느끼기엔) 내 삶에 정말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결혼을 '레벨업'이라고 표현하던 나에게 이혼 후 다시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것은 삶의 단계에서 뒤로 후퇴한 것 같아 괴로웠고, 부모님과 상의 후 독립을 하기로 했다.
후퇴가 아니고, 방향을 바꾸는 것뿐이야
부모님께 감사했다. 나의 이혼은 부모님께도 큰 상처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감사하게 나의 부모님은 강하셨고, 나에게 한 번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셨다. "이것도 경험인 거야. 딸아 너는 여전히 충분히 예뻐. 너의 일에 집중하고 열심히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시간을 갖자. 흠 아니야. 너는 더 행복해질 거야." 그렇게 수시로 나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언제나 '괜찮다'하시며 그 상황에서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시고 서포트해주시는 부모님이어서 참 감사하다.
이혼을 하고 다시 '미혼'상태가 되었을 때, 빽도를 피하기 위해 나는 '독립'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 게 아니고, 그냥 다른 길로 가는 거야.' 생각했다.
여러 종류의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살면서 몇 번의 방향 전환이 있었다. 통계학을 전공했지만, 지금 나는 커피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짧게나마 회사에서의 회사원 생활을 경험했고, 다른 길이 가고 싶었다. 사부작사부작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기도 했고, 지금은 공방을 차려서 커피를 내리며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나는 이십 대 후반부터 서른이라는 나이까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 또래의 다른 친구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거나, 가정을 이루어 육아를 하며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는 내 사업장을 차릴 막연한 꿈을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한 번씩 불쑥 내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나고 돌아보니 그때 그렇게 방향 전환을 해서 나는 지금 이 일을 하며 살아가는구나 싶다. 이 길 또한 순탄치는 않으나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가면 그것들이 쌓여서 만든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