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이혼 후 생긴 찌질함이 있다. 겉으로는 절대 표현하지 않지만,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생겼다는 점이다.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지만 나는 이혼을 했다. 여러 맞지 않는 부분들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건지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나는 다시 사랑을 하고 싶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이런 소망 때문에 그런 찌질한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그런 내 모습을 너무 받아들이기 싫었다. 왜 이럴까. 결혼 전에도 충분히 혼자였던 시기가 많았는데, 이랬던 적은 없었단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이혼'은 나에게 꼬리표가 되고, 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장난으로나마 '누구 소개 좀 시켜줘~'했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 누구도 먼저 그런 얘기를 나에게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혼자 일을 하기에,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다가오던 사람(남자)들도 내가 이혼한 사실을 알면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다시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한 부분에 더 집착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 이 감정을 외면하고 숨기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에 계속 매달려서 감정을 소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점을 옮기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언젠가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일러스트와 함께 발견한 글귀이다. 검색해보니 김연수 작가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나온 문장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 봤던 글귀임에도,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었나 보다.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에 문득 떠오른 걸 보면 말이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혼자 일을 하다 보니, 생활이 불규칙했던 나는 그 순간 휴대폰을 꺼내 들고 알람을 맞추기 시작했다. 일어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성경책 읽는 시간, 출근 시간, 하루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시간 등 내가 규칙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시간을 정하여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 공방에서 일해야 하는 것도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흘러가는 시간에 나를 맡기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주도적으로 활용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가시적으로 보이는 효과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나를 돕는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