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빠더너스 문상훈

by 티후

"너무 무겁지 않게 적으려 했으나

쉬운건 없다

미안합니다"


그래도 내 흙이 묻은 거라 씻지도 않고 내놓습니다.

소년 문상훈에게

너 많이 잘못한 거 아니야. 십 대를 잘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조금 내려놔도 된다. 나쁜 짓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그 순간들을 즐기지도, 공부를 하지도 못했잖니. 그럴 필요 없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너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어. 고민했던 일들의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고민을 핑계 삼아 상처를 남긴 부모님의 표정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술 마실 때마다 생각이 나. 짜증과 불안 잘 구분하고, 많이 연구하고 많이 공상해라. 여드름 미워할 시간에 짝사랑 더 짙게. 많이 해라. 무엇보다 스스로를 덜 미워했으면 해. 알겠니. 그럼 안녕.

어릴 때는 아직 간지러워서 못 쓰고, 그 또래가 되면 괜히 싱거워서 안 쓰고, 시간이 지나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못 쓰는 단어. 청춘. 자음과 모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과 ㅊㅊ이 들어가는 발음 소리, 푸른 봄이라는 뜻까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데가 없지만 도무지 언제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짝사랑을 하는 동안에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스쳐 지나간 것이 고맙고 내가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당신 것 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일기장에 하루걸러 적힌 이름뿐일지라도 나는 당신에게서 사랑도 배우고 체념도 배우고 미련도 배운다.

내가 하는 말들로 나를 판단할 거라고 생각하니 말들을 점점 더 오래 고르게 돼요. 그리고 어렵게 고른 말들도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미워질 때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 별점을 매기려 들까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별점의 기준이 되니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없게 됩니다.




빠더너스 문상훈

이등병 문상훈

복학생 문상훈

고등학생 문상훈

기자 문상

일타강사 문상훈

홈비디오 문상훈

오당기 문상훈

...

메시도 이렇게나 많은 수식어를 얻진 못했다.

문상훈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둥실하고 겅중한 체형에 잘 웃고 웃기는 유튜버구나' 했다.

이등병 문상훈을 볼 때, '특징을 정말 잘 살리는 좋은 연기자구나' 했다.

기자 문상을 볼 때, '짧고 굵은 코미디도 할 줄 아는 코미디언이구나' 했다.

일타강사 문상훈을 볼 땐, '다양한 소재로 코미디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이구나' 하기도 했다.

홈비디오 문상훈은, '일상에서의 문상훈도 코미디뿐이구나' 했다.



그런데 오당기의 문상훈은, '마냥 웃기기만 한 사람은 아닌 사람이구나' 싶었다.

마침내 이 책의 문상훈은, 잘 가꿔온 농작물을 씻지도 않고 내놓는다.

몇 번이고 심어내고 뽑아내고, 되새김질 해온 그의 정원을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보라 말한다.

그의 용기가 착하고 기특하다.


문상훈에겐 세상의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

가을이 오는 것에도 가는 것에도

저녁을 먹는 것에도 길을 걷는 것에도.

그렇게 의미가 가득한 세상을

문상훈이 삼키고 되새기고 곱씹어서

모난 곳 없이 우리들 입에 넣어준다

그런데

유달리 세상에 예민하게 닿아있는 취향 덕분에 외로워한다

너무 민감한 탓에 남들보다 일찍 아프고, 늦게 아문다

그래서인지

문상훈이 곱씹어 내게 보여주는 세상은 모난 곳 없고 웃을 일이 가득하다

그의 코미디엔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고 웃는 사람만 가득하다


세상을 낱낱이 관찰하고 꼼꼼히 씹어 삼키는 버릇 때문에 문상훈은 세상의 모든 걸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목구멍에 넘어간 세상을 밤새 홀로 소화시키느라 잠 못 이루던 버릇 때문에 우리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문상훈은 먼저 다 아파보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먼저 다 슬퍼보고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문상훈이 왜 문상훈이 되었는지, 밝게 웃는 얼굴에 어떤 슬픔이 있었는지, 그 슬픔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 책은 문상훈의 정원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남이 읽을 거라 생각하고 쓰는 글' 이기 때문에 정원 구석 땅속에 박힌 개미굴까지 들여다볼 순 없지만, 오랫동안 혼자 앓고 끓었던 정원의 문을 열어준 문상훈의 이야기이다.

내가 남들보다 유난히 난리이고, 남달리 법석이라면, 그런 자신이 미웠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자. 우리보다 훨씬 난리 법석인 문상훈의 위로가 적혀있다. 그의 생각이 알알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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